1, 오랜만에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가 삽짝 밖에 나오셔서 웃으면서 그래 왔나, 하며 반겨주시던 시절, 아버지와 읍내 장터에서 국밥을 같이 먹던 그 순간들이 그리워진다. 국밥집은 시장 한켠에 있었고 인심 좋은 할머니는 언제나 큰 손이었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며 가마솥을 감싼다. 그 열기는 주변 찬 공기까지 따뜻하게 했다. 솥을 열면 고기와 토란대, 채소. 양념이 한 솥에서 요란하게 뜀박질하며 끌어 올랐다. 뚝배기에 한 국자를 떠서 탁자에 올리면 덜덜 떨던 몸이 녹아내렸다.
2, 아버지가 새 옷을 사 오셔서 입혀 주실 때의 생각이 아련하다, 새까만 학생복, 당시엔 남자아이 옷은 다 그랬다. 다른 옷은 살 곳도 없었다. 사업차 대구에 자주 가셨던 아버지는 명절엔 사과 한 박스를 메고 오시곤 했다. 나무 궤짝 속 겨에 파 묻혀 있었던 사과를 한 개씩 꺼내 먹던 맛은 참 좋았다. 사과를 박스로 사서 먹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것도 명절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3, 어느 여름 날 고향집에 도착했으나 부모님이 안계셨다. 강을 건너 들판에 들어서니 멀리서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맨발로 감자밭에 발을 들여놓으면 흙이 발바닥과 닿는 감촉은 행복이었다. 가끔은 맨 땅에 누워 하늘을 보면 편안함을 느낀다. 인간은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줄기를 잡고 뽑으면 감자가 줄줄이 따라 나오곤 했다. 어떤 것은 호미로 흙을 헤치면 속살을 드러낸다. 흙에서 하는 작업은 자연과의 일치에서 오는 즐거움이었다.
4, 겨울날 아버지는 가끔 민물 붕어를 새끼에 매달고 오셨다. 바로 회를 떠서 먹곤 했다. 맛도 맛이었지만 아버지의 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며 온다. 붕어는 2km나 되는 곳에서 사오셨고, 고향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겨울에 민물 회를 먹었다.
살아오면서 집을 장만하고, 아이들이 자라나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며 새 식구를 맞는 등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다.
우리 가족은 가끔 삼겹살 파티를 한다. 내가 구워서 자르며 아이들을 먹게 한다. 그 때마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챙겨주시던 모습이 그립다. 부모님이 했던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문득 떠 올린다. 행복 중에서도 가장 큰 행복은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던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정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