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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헤밀리 스토리

떠난 뒤...

by 옐로우 리버 2018. 10. 6.

식탁에 앉았다. 이미 해는 기울었다. 냉장고 모터 소리만 들리고 집안은 적막이다. 베란다 화분들은 가로등 간접 빛을 받아 희미한 모습이다.

닷새 전 일요일 오후2, 둘째 딸아이는 오른 손으로 내 왼손을 살며시 잡고 있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왔다. 딸아, 참 예쁘구나.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딸은 가냘픈 소리로 라고 했다. 둘째 딸은 사진 속 초등학생 때 같이 언제나 안쓰럽고 어린아이로 내 마음속에 있어왔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문이 열리고 식장으로 들어섰다. 친척. 지인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마쳤다. 큰딸이 결혼 후 떠난 뒤에 둘째 딸과 같이 있었다. 언제나 자신의 방에 있었고. 같이 아침을 먹곤 했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말과 함께 일터로 가고 밤이면 언제나 돌아왔다. 이제 딸애들이 쓰던 방들은 모두 텅 비었다.

지금 이 시간 작은 딸은 신혼여행중이다. 30년을 넘게 같이했던 삶을 끝내고 곁을 떠났다. 순리다. 하지만 어둠이 밀려드는 가을저녁, 왠지 쓸쓸하다. 언제나 저녁은 기다림이 있었다. 이제는 밤이 되어도 올 사람이 없다. 사람마다 겪는 일이지만 텅 빈 한구석은 슬프다.

희뿌연 하늘에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진다. 가을이 깊어간다. 잎들이 그렇듯 자식들도 부모를 떠난다. 밖은 어둠에 쌓였다. 식장에서 느꼈던 딸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여보, 딸들이 떠나니 어때, 난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쓸쓸해, 아내는 말없이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나도 그랬다. 차츰 둘만의 삶에 적응해 갈 것이다.

정두효 201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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