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앉았다. 이미 해는 기울었다. 냉장고 모터 소리만 들리고 집안은 적막이다. 베란다 화분들은 가로등 간접 빛을 받아 희미한 모습이다.
닷새 전 일요일 오후2시, 둘째 딸아이는 오른 손으로 내 왼손을 살며시 잡고 있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왔다. 딸아, 참 예쁘구나.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딸은 가냘픈 소리로 ‘네’ 라고 했다. 둘째 딸은 사진 속 초등학생 때 같이 언제나 안쓰럽고 어린아이로 내 마음속에 있어왔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문이 열리고 식장으로 들어섰다. 친척. 지인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마쳤다. 큰딸이 결혼 후 떠난 뒤에 둘째 딸과 같이 있었다. 언제나 자신의 방에 있었고. 같이 아침을 먹곤 했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말과 함께 일터로 가고 밤이면 언제나 돌아왔다. 이제 딸애들이 쓰던 방들은 모두 텅 비었다.
지금 이 시간 작은 딸은 신혼여행중이다. 30년을 넘게 같이했던 삶을 끝내고 곁을 떠났다. 순리다. 하지만 어둠이 밀려드는 가을저녁, 왠지 쓸쓸하다. 언제나 저녁은 기다림이 있었다. 이제는 밤이 되어도 올 사람이 없다. 사람마다 겪는 일이지만 텅 빈 한구석은 슬프다.
희뿌연 하늘에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진다. 가을이 깊어간다. 잎들이 그렇듯 자식들도 부모를 떠난다. 밖은 어둠에 쌓였다. 식장에서 느꼈던 딸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여보, 딸들이 떠나니 어때, 난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쓸쓸해, 아내는 말없이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나도 그랬다. 차츰 둘만의 삶에 적응해 갈 것이다.
정두효 201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