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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헤밀리 스토리

손녀야, 빠이 빠이...

by 옐로우 리버 2018. 12. 17.

손녀야, 빠이 빠이....                                                                                                                                                                                                                            

두툼한 방한모자를 눌러쓴 아린이는 엄마와 손을 잡고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아직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손녀는 차에서 내리자 마자 엄마 손을 잡고 한쪽 손을 나에게 내민다. 할아버지가 같이 집으로 가는 줄 아는 것이다. 집에는 늘 엄마와 손녀밖에 없는 공간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위는 외국현장으로 파견됐다. 이제 3년이 지났다. 손녀는 늘 엄마와 외할아버지 집을 오가며 살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두고 외국에서 일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수 많은 사람들의 노고의 대가로 한국은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70년대 중동국가로의 보직 변경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국민소득 1천 달러 시대, 살길은 해외 진출이었다. 달러의 유입은 경제발전의 토대가 됐다. 베트남전쟁에 파견된 군인들, 독일에 파견된 광부. 간호사들과 가족들의 아픔도 큰 자산으로 승화 됐다..

한민족의 고달픈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부존자원이 전무한 민족이 살 길은 해외 진출이다. 중동에 파견됐던 근로자들이 공업용 알코올로 술을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얼마 전 휴가 왔던 사위는 누룩을 구입해 갔다. 현지에서 막걸리를 만들어 마신다고 했다.

남들이 해외에 파견되어 일하며 어렵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그렇지. 참 힘든 일이다. 국가에 큰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공감 가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해가 부족했었다.

지금은 엄마와 둘이 살아가는 어린손녀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도 손녀는 매일 동영상으로 아빠를볼 수 있어 다행이다. 정두효 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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