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방에 누워 보니, 처마 밑 빗물 떨어지는 소리 똑똑똑....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집은 옛집이 아니지만 비내리는 소리는 그날의 그 소리다. 지난날 이런 봄날엔 가족들과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없는 곳에 비만 내린다. 집 밖 저 멀리 강물이 흐르고, 강 건너 먼 산에는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피었다. 서늘한 바람은 산을 타고 다가와 강을 건넌다.
그 옛날 한두 발 내려서면 강물과 만났고 여유롭던 물소리는 정감이 있었다. 그곳엔 언제나 마을 아낙들의 빨래하는 모습들이 있었고, 송사리는 떼 지어 손길을 따라 놀았다. 황강댐은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다. 가까이 흐르던 강물은 멀어져 갔고, 잔잔했던 강물은 가파르게 흘러간다. 하얀 모래밭은 모두 팔려 나갔고, 강바닥은 내려앉아 다가가기도 쉽지 않다. 물은 한쪽으로만 흘러 깊은 골을 만들었다. 그 넓고 맑았던 강은 잡초로 무성하다.
옛날의 이 길은 골목마다 아이들 노는 소리, 사람들의 부산함으로 가득했다. 저녁이면 굴뚝마다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 엄마들의 아이 부르는 소리가 이곳저곳서 들렸다. 지금은 마을 길을 걸어도 사람 소리 없고, 집집마다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 한 사람씩 살아가고 있다. 옛날의 이 길은 청춘들의 길이었다. 아랫마을, 윗마을 청춘들은 밤을 오가며 젊음을 불태웠다. 밤이면 마을 곳곳, 사랑방마다 스캔들 얘기로 꽃을 피웠다.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고, 일부는 사실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고 청춘들은 노인으로, 또 많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
봄비가 내린다. 처마 밑 비 오는 소리는 옛날과 같은데,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의 옛 모습도 간 곳이 없다. 내가 누운 이곳은 가족들이 살았던 곳, 집 앞 길은 친구들, 마을 사람들의 길이었다. 지금은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 바람소리만 스쳐간다. 삶을 같이 했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비에 젖은 5월의 산과 들은 초록의 빛으로 생명이 넘친다. 정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