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건너편 아파트 위를 솟아오르지 못하고 있다. 밖이 밝아 온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동쪽하늘은 어둡다. 베란다 밖 창유리엔 나뭇잎이 바람에 출렁인다. 유리를 쓸기도 하고 지나쳐 가기도 하며 바람 따라 움직인다. 갑자기 찾아온 더위는 봄꽃들을 피웠고, 나뭇잎들을 소생시켰다. 꽃잎들이 바람에 낙하하고 있으니 이미 만개했다고 할 수 있다.
봄이 왔나 했는데 이틀째 겨울이다. 쌀쌀한 날씨는 꽃들을 움츠리게 한다. 연녹색 잎은 추위에 떨고 있는 것 같다. 낮 기온이 22도를 웃돌던 이상 기온이 밤새 2도로 떨어져 나무들은 혼란에 빠졌다. 4월 초 더운 날씨가 겨울이 멀리 갔다는 신호에 서운함이 있었다. 봄은 겨울의 진통 속에 기다림이 있어야 더 아름다운 것인데, 갑자기 찾아와 꽃을 피우고 옷을 벗겨 아쉬웠다. 겨울은 가버린 것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더운 날씨가 비정상이었다. 겨울이 가기도 전에 봄이 찾아와 혼란스러웠다.
겨울이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나름대로 매력도 있다. 추운 계절엔 봄의 나른함이 없다. 언제나 몸은 움츠리고 머리는 맑다. 따뜻한 이불 속의 포근함도 좋은 느낌이다. 가끔씩 세상을 덮은 흰 눈도 즐겁다. 덜덜 떨며 포장마차에서의 소주 한 잔은 행복이다. 모두가 겨울엔 봄을 꿈꾼다. 그래서 봄은 더 아름답다. 올 봄은 너무나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다. 갑작스레 계절이 바뀐 것이다. 겨울이 한순간 물러가기 보다는 봄의 기다림을 오래 느꼈으면 좋겠다. 찬바람이 부는 들판에서 조심스럽게 내미는 풀들의 새싹을 봤으면 좋겠다. 천천히 밀고 나온 풀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도 좋다. 봄꽃의 봉오리가 천천히 펴지는 모습을 고고 싶다.
올해의 봄은 갑작스레 찾아와 하루 이틀 사이 풀들이 솟아나고 꽃들이 만개했다. 언제부턴가 봄이 사라졌다며 한탄 했었다. 올해는 그 정도가 아닌 것 같다. 그 이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다행이 오늘은 초봄을 느끼게 한다. 쌀쌀한 날씨에 손까지 시릴 정도다. 계절이 제 모습을 찾으려나보다, 아닐 것이다. 이미 목련은 지고 있다. 사람들이 겨울옷을 벗고 있다. 계절에서 계절로의 순환 법칙이 사라져 가고 있다. 봄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지금은 해가 솟아 연두 빛 잎들이 마루에 와 닿는다. 나무 가지들도 바람에 흔들린다. 어제 오늘은 겨울과 봄이 동행하고 있다. 나는 이런 계절이 좋다. 두 계절을 같이 느낀다. 찬바람을 맞으러 나가야겠다. 꽃들도 만나 계절을 눈으로 봐야겠다. 정두효 (2017년 4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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