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눈믈은 이모의 죽음소식을 듣고 나서였다.이모는 4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75년 군 생활을 하고 있을때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느 날 대구의 한 병원에 갔다. 이모는 침대에 누워계셨고 내 또래 이종사촌이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병명은 확실치 않았으나 암이었고 이미 늦었다는 사촌의 얘기를 들었다. 어머니 형제들인 외삼촌과 두 이모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전쟁이 끝난 후 한국으로 오셨다.
어머니가 16세 되던 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히로시마 원폭으로 돌아가셨다. 살아 남은 가족들만 고향 합천으로 왔다. 우리말을 할 수 없었던 어머니형제들의 삶은 고달팠다.
나의 어머니가 17세에 결혼 하셨으니 이모는 더 어린나이에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 가셨다. 사촌은 병원비가 없어 몰래 도망을 쳐야할 처지라고 했다. 국민소득 1천 달러, 의료보험도 없던 시대, 대부분 큰 병을 얻으면 대책이 없었다. 이모는 남편의 술 주정과 폭력으로 병을 얻으신 것이라고 했다. 이모도 어머니도 세상을 일찍 떠나셨다. 어쩌면 원자폭탄의 간접영향인지도 모른다.
군대생활을 마친 76년 가을 날 이모님의 부음이 들려왔다. 어머니는 소식을 들으시고 말없이 흐느껴 우셨다. 눈물을 훔치시며 일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동생을 잃어 셨으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살아오며 어머니를 생각할 때 마다 가슴이 저려오곤 했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던 시절, 당시엔 가족이 세상을 떠나도 찾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신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저 세상에서 이모를 만나 못 다한 정을 나누고 있을 것 같다. 오늘 같이 해가 바뀌고 추운 날엔 어머니가 그리워지고 옛 생각에 마음이 아파 온다. 20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