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겨울은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다. 하늘은 시릴 정도로 맑고, 산과 들과 사람 사는 곳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사람이 옷을 벗으면 나체가 드러나듯 겨울은 모든 것을 벗어 던진다. 나무들과 풀들은 앙상한 가지로 숨겨져 있던 모습을 보여준다.
여름산도 좋다. 자연은 푸른 녹음으로 가득해고 생명이 넘친다. 하지만 싱싱한 푸름은 속을 볼 수 없다. 숲은 보이지만 나무를 볼 수 없다. 산이 옷을 벗으면 언덕과 언덕으로 이어진 등고선이 나타나고 계곡이 나타난다. 어떤 나무는 멋지게 쭉쭉 뻗어 있고 어떤 나무는 무 다리에 잡다한 가지들로 혼돈 자체이기도하다. 또 다른 나무는 멋대로 뒤틀리고 꼬부라져 힘든 삶의 역사를 얘기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나무들을 고가에 사들이고 정원수로 선호한다.
선진화된 사회라면 모두 감옥행일 것이다. 자연은 옮겨갈 수 없는 것이고, 형벌도 가혹하다. 이들의 삶의 여정은 자연 속에 그대로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옷을 벗으면 가려졌던 자연의 추한 모습들을 드러낸다. 버려진 쓰레기 더미를 안고 신음하는 땅, 들판을 뒤덮고 있는 비닐조각들의 혼란, 오염의 극치다. 고속도로 주변 산을 파헤쳐 만든 분묘들은 자연의 모습을 망가뜨리는 추함이다.
겨울이 오면 사람 사는 마을들도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높은 곳에 서면 마을들은 사람들이 다니는 이어진 골목들과 집안의 움직임까지 드러낸다. 자연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옷을 벗지만 사람들은 옷을 두껍게 입는다. 여름날에 드러냈던 몸은 추위가 오면 더 깊이 감추어진다.
나무들은 태양이 내리 쪼이는 여름날엔 두꺼운 천으로 몸을 감싼다. 어쩌면 왕성한 에너지를 축적하여 겨울을 나고 후손의 번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연과 사람은 반대로 살아간다. 입으면 벗고 벗으면 입고 살아간다. 정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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