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왔다.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근다. 걸었던 산행코스가 눈에 선하다.길게 늘어선 바위능선, 깍아지른 봉우리들, 눈 덮인 산 길, 아이젠 찍는 소리가 들린다.
# 1박2일의 산행, 한계령에서 시작된 산길은 숨을 헐떡이게 했다. 30분을 오르고 아이젠을 찼다. 발 아래 눈이 뽀드득 뽀드록 밟힌다. 끝없는 오르막 길, 숨은 거칠다. 그저 앞사람과 땅만 보고 발을 땐다. 잠깐의 휴식에도 눈 앞은 절경으로 가득했다. 멀리 보이는 소청은 까마득, 언제 저 곳에 다다를까 걱정이 됐다. 여섯 시간의 여정 끝에 정상에 올랐다. 해발 1708m, 바람은 거세고 서쪽하늘은 노을로 덮였다. 오랜세월 바람속에 바위들만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대피소에서의 하루 밤은 순식간에 갔다. 늘어진 몸은 깊은 잠으로 곤두박질 쳤다.
대청봉에서의 하산 길은 꿈길이었다. 8Km로 이어지는 내리막은 허벅지를 혹사시켰다. 깊은 계곡, 우뚝 선 절벽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다른 모습들이 나타났다. 어떤 바위들은 주변 바위들과 어울러져 하늘로 뻗었다. 또 다른 바위들은 홀로 솟아 자존을 뽐내는 듯 했다. 눈 앞에 확 다가오는 절벽은 내려 앉을 것 같이 휘협적이었다. 바위들은 가로세로 선을 새겨 조각작품 같았다. 절벽 끝은 파란 하늘에 닿았다. 소나무는 틈새마다 뿌리를 내리고 쭉쭉 뻗었다. 영양분도 없는 바위틈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버텼는지 짐작이 갔다. 계곡을 질러 오는 바람은 휙~쉭~ 무거운 소리를 냈다. 세월을 두고 굴러떨어진 집채같은 바위들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물이 넘치면 물을,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며 하얗게 다듬질이 되어 있었다. 천불동계곡은 비경의 연속 이었다. 곳곳으로 작은 계곡들이 이어져 감탄을 자아냈다. 설악은 설악이었다. 눈 덮인 큰 산이었다. 천 길 절벽에서 떨어진 산양은 차거운 얼음위에 숨을 거뒀다. 계곡은 깊고 웅장했다. 늠늠하게 치 솟은 바위들은 천 년, 만 년을 두고 설악의 이름을 빛낼 것이다.
# 설악은 오르지 못할 산으로 여겼었다. 찬 바람불고 어둠이 내리는 정상에서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거의 탈진상태 였으니까, 하루 이틀이 지나자 다시 가보고 싶은 산이 되었다. 안에서 본 설악은 중국의 명산, 황산 못지 않을 것 같았다. 산에 오르는 사람만 설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두효) 2018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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