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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에세이 스토리지

순환

by 옐로우 리버 2018. 9. 1.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처서를 지나서 일까. 비가 내려서인가. 매미들은 어제까지도 시끄럽게 울어댔다. 밤낮이 없었다. 울음을 멈춘 것은 계절의 바뀜을 알아서 일 것이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땅속에서 기다렸다. 산고의 고통을 극복하고 바람과 태양과 실록 속에서 한 달을 살다가 갔다. 계절은 순환하고 매미는 순응하며 살아왔다. 계절이 변하는 전환기에 미련 없이 목숨을 거뒀다.

 

매미들이 떠난 숲에는 가을 풀벌레들이 자리를 잡는다. 숲속에서 온갖 벌레들이 울기시작하면 이미 여름은 안개처럼 멀리 가고 없다. 풀벌레들은 여름에도 울었다. 하지만 가을의 울음소리는 더 맑고 절박하다. 그들이 그렇게 울어대는 것은 계절이 짧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짧은 계절에 번식을 끝내야 한다. 풀벌레들의 울음도 복제품을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다. 자신의 자리엔 또 다른 자신을 남기고 간다. 풀벌레들 울음이 잦아들면 숲에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들이 열매를 떨어뜨린다. 투닥 투닥 두두둑~~ 탁탁~ 숲은 생명들의 소리로 가득하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무엇이든 지상에 남기고 간다. 떨어진 도토리는 사냥 당한다. 다람쥐, 청설모들이 숨기고, 사람들이 가져간다. 어쩌다 숨은 도토리가 싹을 틔운다. 숲의 부산함 속에서 하늘은 더 맑고 차갑게 변해간다.

 

풀벌레들은 또 다른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울어댈 것이다. 매미가 남긴 알은 세월을 두고 환생한다. 강자들만 살아남아 다시 울며 시간을 기다린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져 간다. 정두효 201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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