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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에세이 스토리지

밤의 시작

by 옐로우 리버 2018. 9. 11.

서늘한 바람이 스친다. 풀잎들의 흔들림이 조심스럽다. 강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는 수양버드나무들이 늘어져 고요하다. 노을이 버드나무 가지들과 물속에 깊이 잠겼다. 수면은 작은 고기들이 일으킨 파문으로 반짝인다.

석양이 서쪽 산을 물들이고 가파른 동쪽은 시커멓다. 마을을 지나가는 좁은 길엔 차들이 줄을 잇는다. 길 입구에 가로등이 켜졌다. 강아지들이 낮선 사람이라며 이곳저곳서 짖어댄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이다. 등 뒤로 해가 동쪽 하늘을 더 높고 넓게 비춘다. 노을도 더 짙다. 하늘 멀리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산 정상을 이은 등고선 같다. 높은 하늘 바람은 구름에게 산도 만들고 도 만들라고 하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먼 구름 속에서 별들이 나타난다. 밝은 별만 눈에 들어온다. 가로등은 편리하지만 별들을 가져갔다.

시골하늘의 노을과 구름, 바람은 모두 시인이다. 스스로 시를 쓰고 사람들에게 읊게 한다. 밤하늘에 별빛이 빛나고 구름이 별들을 밀어내며 서쪽으로 흘러간다. 밤은 더 깊어 가고 벌초를 끝낸 도시의 차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다. 20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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