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한꺼번에 와락 피어나 잎을 바람에 날리며 떨어진다. 남한산성 참나무 사이 이곳저곳에 진달래꽃이 피었다. 산을 들어서는 입구부터 정상 400m까지 온 산을 덮었다. 짙은 분홍색. 연분홍꽃들이 수줍은 듯 산속에 흩어져 있다. 산길엔 작은 벌들이 가는 길을 막는다. 벌들은 추운 겨울을 어디서 보내고 이렇게 길 위를 날아 다니는지 알 수 없다. 꽃을 찾아 산속을 헤매는 것 같다.
진달래는 마른 장작 같은 가지에서 꽃을 만개 시킨다. 쭉쭉 뻗은 매끈한 가지 끝에 꽃송이를 매단다. 참나무. 잡목들이 하늘을 가리기전 꽃씨를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진달래는 일찍 산을 덮는 것 같다. 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꽃을 피우고, 이렇게 삭막한 도시 야산에서 봄이 오면 피어난다. 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목련꽃은 벌써 떨어지고 없다. 아파트 벽을 덮고 있는 담쟁이는 언제 잎을 내밀었는지 연녹색이다. 단지 내 라일락도 꽃을 피웠다. 봄의 온도가 오르자마자 모든 꽃들이 일제히 피어 났다. 잎들은 알지도 모르는 사이에 하늘을 가리고 담을 덮는다.
꽃이 피고 잎이 커가는 모습은 볼 수는 없다. 시간의 흐름이 보이지 않 듯, 그들이 갑자기 피고 돋아나는 것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자라기 때문이다. 아기가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꽃들도 나무도 쉼 없이 성장한다. 캄캄한 밤에도 달빛 별빛을 보며 이슬을 먹고 자란다. 어느 날 온 산은 진달래로 덮이고, 라일락은 향기를 품으며 가는 길을 돌아서게 한다.
지금은 4월의 오후, 남서풍이 불어온다. 산 넘고 들을 지나 바람이 스쳐 간다. 꽃잎들이 흔들린다. 이제 막 돋아난 연약한 풀잎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춤춘다. 봄은 꽃이 피어나서 아름답고, 세상은 연두색 잎들로 빛난다. 정두효.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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