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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에세이 스토리지

강변엔 노을이 지고

by 옐로우 리버 2018. 2. 9.

 

 

강변엔 노을이 지고....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은 강변이었다.

돌계단을 내려 서면 콩밭이 있고, 오솔길 언덕엔 키 큰 버드나무들이 서 있었다. 50여 미터를 걸으면 하얀 모래밭이 강물따라  끝없이 펼쳐 졌다.

 강물은 급한 골짜기를 벗어나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넓게 흘렀다. 물은 흐르며 다른 물줄기를 만나 깊어져 가고, 바람이 불면 수많은 무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강물은 뜨거운 태양, 달빛아래서도 쉼없이 흘러 낙동강으로 갔다.

 

 여름 날 저녁 강변 모래밭에 누우면 태양이 뉘엿뉘엿 산허리에 걸리고,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강물에 잠기곤  했다. 물속에 있는 긴 버드나무 그림자는 바람 따라 출렁였다. 농부들은 하루 일을 끝내고 강을 건넜다. 등 지게를 진 마을사람들, 빈 바구니를 머리에 인 아낙네들의 발걸음은 첨벙첨벙 바쁜 소리를 냈다. 인적이 끊어진 강변엔 붉은 강물이 흘러가고 어스름이 조금씩 다가왔다. 먼 산에서 내리기 시작한 어둠은 순식간에 강변에 다다르고, 밤으로의 여정이 시작됐다. 강변에 누워 노래를 읊조리기도 했다. ‘저녁노을 붉게 물든 수평선 저 너머로 그대와 단둘이서 가보았으면, 하얀 돛단배 타고…….’

살던 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어린 날들, 바깥세상은 궁금했고, 넓은 세상으로 향한 소망은 컸다. 어둠이 깔리고 하늘에 별이 빛나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전깃불도 없던 시절 까만 하늘엔 온통 별들로 빛났다. 마당에 서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들이 이곳저곳서 떨어지고, 먼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던 마음은 가슴을 채웠다. 좁은 시골마을을 떠나 거대한 도시생활이 전부였던 삶, 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은 미완이고, 좁은 공간은 아름다움으로 남았다.

                                                                                                              정두효( blog.daum.net/dh5256)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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