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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에세이 스토리지

봄날의 용주초등학교 동창회

by 옐로우 리버 2023. 4. 26.

학교에 들어서자 운동장에는 교단을 중심으로 채알이 들어차 있었다. 천막마다 졸업을 같이한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행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4,5월이면 전국에서는 동창회들이 열린다.
고향을 떠나 살아온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안고 떠난 곳을 찾아오는 것이다.초등학교 6년은 한사람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고 교육기간도 길다.
그곳에는 시간이 남기고 간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추억들이 있다. 졸업 후 이어지는 삶은 학교생활에서 축적된 자양분이 에너지가 되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합천댐이 올려다 보이는 관광농원, 어두컴컴한 언덕길을 오르면서 낯익은 얼굴들을 만난다. 1년에 한번, 그리고 수십 년을 만나왔던 사람들,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 인지를 알 수 있다. 목소리는 지문처럼 사람의 특성을 나타낸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벌써 노래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흐르고, 모두들 흥에 겨워 춤춘다.
총동창회가 열리기전 같은 해에 졸업한 동기들의 전야제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잔씩 기울인 얼굴들엔 붉은 기가 감돌고 공간은 즐거운 기분들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은 댐으로 오르는 4차선 도로 옆이고, 언덕 아래쪽은 댐에서 나온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간다. 깜깜한  하늘에는 별들이 무리지어 반짝이고 있는 밤이다. 건너편 저 먼곳에는 95미터 높이의 웅장한 댐이 오색의 조명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가을밤 같이 상쾌하고 공기가 맑은 초전녁이다.
동창회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시골 조그만 학교는 입학을 하면 거의 6년을 같은 반에서 보낸다. 짧지 않은 세월동안 학년은 달라도 위아래 선후배를 다 알게 된다. 누구는 어떤 친구의 형이고, 누나이고 동생이 되는 것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마을들은 모두가 서로의 친인척으로 연결된다.
동창회가 열리는 날이면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넓었던 운동장. 큰 교사가 좁고 작게 보이지만 그곳에는 추억과 잊지 못할 이야기들이 서려 있다. 사람들마다 친구들.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머리 속에 잠재되어 있다.
60년대 시절, 교실복도는 학생들이 반질반질하게 광을 냈다. 우리들은 바닥에 양초 칠을 하고 큰 돌로 마찰을 시키면 나무 바닥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비가 많이 내려 운동장 흙이 쓸려 가면 책보자기로 황강모래를 퍼 날랐다.
지금 같으면 학부모들이 떼로 몰려와 교장실을 점령하고 난리가 났을 일이다. 인권침해니. 노동착취니 하며 고발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때는 즐거웠고 힘 들지도 않았다. 운동장은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공놀이를 하는 곳이었다. 여학생들에겐 줄넘기. 공기놀이 등을 하던 즐거운 땅이기도 했다.
자갈로 교실복도만 광을 냈겠는가. 겨울이면 난로 땔감을 위해 인근 산으로 동원됐다. 책보자기에 나뭇가지를 모아 교실난로 옆에 쌓아두고 도시락을 데워먹기도 했다. 자급자족을 하던 시절이다.
개인소득 1천 달러도 안 되던 시절의 삶이 어떠했겠는가, 전 세계 국가 중 꼴찌수준에 머물던 시대였다. 맨 아래 도시락은 누룽지가 되어 고소한 점심이 되기도 했다.
나무하러 수백 명이 산에 오르면 놀란 토끼가 아이들에게 잡히기도 했다. 토끼는 교장선생님에게 진상 했던가. 그런 것들은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지금 같으면 내 아들이 잡았으니 토끼를 돌려달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에는 선생님에 대한 사회적 지위도 높았고 존경심도 컸다.
학생들 간에는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동창들이 만나면 학년별로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 얘기가 나오곤 한다. 어느 선생님이 좋았다 던지, 어떤 선생님에게 무슨 일로 단체 기압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등, 어느 총각선생님이 처녀선생님과 연애를 했다는 등 추억들이 줄줄이 나온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에 쭉 서서 오줌발 시합을 하던 시절, 창문 밖으로 오줌을 발사하며 힘자랑 하던 친구들의 모습들도 기억의 한편에 있을 것 같다.
청소를 위해 교실바닥 밑에 들어가면 움푹 움푹 파인 곳이 곳곳에 있었다. 학교를 지을 때 묘지를 파낸 흔적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어쩌면 맞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밤이면 깜깜한 복도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까만 긴 머리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귀신 이야기. 직접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무서웠다. 귀신은 왜 소복 입은 여자귀신 얘기만 있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학교가 설립 된지 거의 100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많은 선생님들과 졸업생들이 머물다가 떠났다. 그 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고 나도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지 오래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시꺼먼 송판으로 지어진 교실은 없어졌지만 지금의 교실도, 잔디 운동장도 그 땅위에 지어졌다. 그 시절 그 얘기 들은 아직도 그곳에 있다. 수많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던 소리도 그 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는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소양을 갖추는 곳이다. 졸업을 한후에는 더 넒은 곳의 삶을 향해 떠난다. 6년을 머물렀던 교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이야기들이 스며 있다.
동창회에서는 그 많은 얘기들을 되새김질 해보고 온갖 추억을 떠 올린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 새로운 추억과 이야기들을 만들고 떠난다. 새들이 둥지를 떠나 듯이 곳곳으로 흩어져 간다. 정두효 / 202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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