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그리고 뻥튀기
아이들은 골목에서 아저씨의 오른손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지렛대에 힘이 가해지자 ‘뻥~’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귀를 막았던 아이들의 함성이 터지고 쌀알들은 빛의 속도로 청망 속으로 확 퍼져 나갔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고 주인의 바구니는 양파 속 같은 하얀 튀밥이 가득했다. 아이들의 목젖에서는 침이 꼴까닥 꼴까닥 넘어 갔다. 아이들은 쏜살같이 뻥튀기를 주워 먹기에 바빴다. 갓 튀겨진 아삭아삭하고 달콤한 맛은 그야말로 ‘짱’ 이었다.
설날이 다가오면 시골마을 골목에는 언제나 이런 풍경이 있었다. 때가 되면 기다림이 이었고, 아저씨의 기계가 자리 잡으면 허름한 옷에 콧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마을아낙들은 쌀, 옥수수, 보리 등을 들고 나와 기계 앞에 줄을 세웠다. 뻥튀기가 튀겨 지면 아낙들은 아이들에게 한 줌씩 나눠주곤 했다. 어쩌면 뻥튀기 아저씨도 조금의 틈새를 열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간식거리도 없고 과자 구경도 어려웠던 시절, 아저씨는 아이들의 기다림이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들은 설 준비를 위해 조청과 뻥튀기를 섞어 과자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엄마 옆에 앉아 낙과라도 먹을 셈으로 침을 삼켰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강정이 만들어지고 엄마와 아이는 겨울밤을 얘기로 지새웠다. 설날이 되면 아이들은 마을 어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으면 모두가 함께 절을 했다. 아이들은 큰 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려진 음식 쟁탈전을 벌였다. 세배기 끝난 방에서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어른들의 웃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다음 집으로 또 다른 집으로 온 동네를 쏘다녔다. 아이들은 하루가 즐겁기만 했다.
지금은 옛 풍습이 사라지고 시골마을엔 아이들도 없다. 아이들이 세배 했던 어른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넉넉했던 그 마음들은 아직도 가슴속을 맴돈다. 나는 맥주 집에서 나오는 뻥튀기를 엄청 먹는다. 어린 시절의 맛을 먹는 것일 게다. 음식 맛에는 추억이 녹아 있는 것 같다. 특히 명절 음식 앞에서는 더 많은 옛날일들이 떠오른다. ( 정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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