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의자에 앉아 눈 감으면 고요가 흐른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침묵의 시간이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것인가. 도시의 시간들은 언제나 분주한 움직임들의 소리다. 집안에 혼자 있다고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냉장고의 팬 소리.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리가 뒤섞여 귓속으로 스며든다.
가평의 한 전원주택. 해발 223미터. 내가 소유한 집은 아니다. 지인이 한 나절을 빌려준 것이다.
정원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피부를 스쳐간다. 부드러운 바람이 소리없이 지나간다. 바람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썰물처럼 사라진다. 파도가 시차를 두고 밀려오듯이 바람도 그렇다. 같은 속도로 지속적으로 불어오는 것은 아니다. 불어오고 지나가고 한 박자 쉬고 다시 밀려온다. 바람 소리가 없으니 침묵은 이어져 간다. 바람이 새게 불오면 귀전을 스치는 소리. 뒷산의 나뭇가지 속을 지나는 소리가 들려오기 마련이다. 오늘은 그런 날씨는 아니다. 그냥 오는 듯 마는 듯 조용히 오고 가버리는 바람이다.
눈을 뜨면 사방은 산들의 등고선이 하늘과 닿았다. 캐나다의 평원을 달리는 트럭을 유튜브로 보곤 했었다. 끝없는 지평선이 푸른 하늘과 맞닿고 저녁노을은 땅끝에서 불타는 모습이었다. 여기 주변은 이디를 봐도 산등성가 하늘에 닿고 있다.
바람 소리가 없으니 구름들은 파란하늘에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럽다. 숲이 품어낸 산소가 있어서 일 것이다. 숲은 생명으로 가득하고 우리을 숨쉬게 해 준다. 숲이 없다면 공기중 21%를 차지하는 산소도 없을 것이다.
곧 8월이 온다. 견디기 힘든 여름이지만 이 계절도 곧 가버릴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이미 가을이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하루해가 이미 짧아져 가고 있다. 왔다가 가는 것이 생명의 순환이고 자연의 법칙이다. 산언덕의 이 고요도 바람과 함께 가버릴 것이다. 그리고 밤이 오기전 나는 도시로 가야 한다. 202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