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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하늘 바람 숲

풀벌레 우는 아침

by 옐로우 리버 2021. 9. 2.

앞뒤 창문은 다 열려 있고, 풀벌레 움음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나무위에서 풀밭에서, 가을의 소리가 절절하다.

풀벌레들은 찌는 듯한 여름에도 이렇게 맑은 소리를 냈는지는 모르겠다. 가을이 오면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잘 들린다. 선선한 바람에 시간의 흐름이 아쉬워서 일 게다. 가을의 울음들은 계절을 품고 있어 더 좋다.

 

토요일인데도 앰벌런스 소리가 요란하게 스치며 멀어져 간다. 이 시간에도 급한 환자가 응급조치를 기다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일순간의 공백도 없이 이어진다. 쉼 없이 돌아가는 것이 세상일이다. 창밖에는 여러 가지 잡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지은 지 40여년을 바라보고 있는 아파트라 나무들의 키도 하늘을 찌른다. 그 시절에는 특히 조경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잡나무를 이곳저곳 띄엄띄엄 심어 놓은 수준이다. 나무가 그냥 공간을 메우고 있을 뿐이다.

베란다 밖 땅 바닥에는 풀들이 자라고 벌레들이 살아간다. 아파트단지 경계선에는 메타세콰이어가 두 줄로 수백 미터를 뻗어있다.

사람들은 전철에서 내려 그 사이를 걸으며 집으로 간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이 숲을 비집고 들어온다. 입추가 지나자 부는 바람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왔다. 햇볕은 따거워도 바람은 열기를 잃었다. 가을을 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다행 스럽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기후변화로 폭염과 폭우가 덮쳤다. 입추에 맞춰 계절이 전이를 거치는 것은 절기가 지켜지고 있다는 증거다.

 

아직은 매미들이 울고 있다. 7년을 기다렸다가 지상에서 한 달을 살다가는 매미들, 여름동안 매일 울었지만 7월의 매미가 8월에도 울어댄 것은 아니다. 늦게 날개를 편 매미들이 바통터치를 했을 뿐이다.

계절도 그렇게 변해간다. 날이 갈수록 기온은 떨어져 가고 풀벌레들은 더 절절한 소리로 울어댈 것이다.

정두효 2001.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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