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서문에는 솔밭이 있다. 키 큰 붉은 적송은 수십 년, 수백 년을 살아와 꼭대기 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사방으로 활짝펼쳐저 있다. 조선 16대왕 인조는 서문을 나서 삼전도에서 병자호란을 마무리했다. 왕의 모습을 비참했으리라. 국제정치에 무지했던 자신의 실정을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10월의 첫째 주 일요일, 솔밭엔 소풍 나온 사람들로 만원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온갖 음식을 내놓고 먹는다. 깁밥, 사과, 고구마, 감. 감자 등 반찬거리, 막걸리 등이 테이블에 올려지고 모두가 와자 지껄하게 가을 낮을 즐긴다.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롯데월드 고층건물이 보이고 남산타워가 아득하다.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서남북 어느 곳에 살아도 금방 오를 수 있다. 남한산성의 북서쪽은 가파르다. 길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오늘 오른 길은 중간정도의 기울기다. 산길 이곳저곳엔 가을 야생화들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야생초, 참나무들이 아직은 초록이다. 이제 한 달 정도 지나면 모두가 떨어지고 몸체. 줄기만 남게된다. 사람들은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른다. 힘든 여정의 끝은 서문, 아니면 북쪽 외성과 암문(비밀통로)이다.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엔 병자호란으로 피신한 왕과 백성들의 공포가 가득했던 곳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어떤 소나무들은 당시의 상활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 자리엔 후세 사람의 등산과 소풍자리로 각광받고 있다. 시간 속에 역사는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이 순간에도 새 역사를 만들어간다. 2019.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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