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공항으로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메시지가 왔다. 병원 장례식장에 먼저 도착한 친구들의 모습은 침통했다. 아내와 두 딸은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넋을 잃고 눈물만 흘렸다. 잠자리에든 사람이 아침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친구의 떠남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1 따뜻한 봄날 언덕, 파란 채소밭, 어미 닭이 병아리들과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어미는 앞서가고 병아리들이 뒤를 졸졸 따랐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기쁨이나 된 듯이 살아있음을 만끽하는 듯 했다. 채소가 자라 듯 병아리들도 무럭무럭 자랐다. 이제 1년이 지나고 채소밭에는 봄의 새싹으로 생명이 넘친다. 지난해의 어미닭. 병아리들은 모두 사라졌다.
#2 오월의 숲은 생명으로 넘친다. 온갖 나무들의 초록 향연과 새와 풀벌레들 소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로 가득하다. 나무들은 바람이 불어오면 가지와 잎을 부비며 삶을 노래하고, 대지엔 부드러운 풀들로 빈틈이 없다. 숲의 활력 속에는 스러져 간 수많은 나무들로 어지럽다. 어떤 나무는 병들어 죽고, 어떤 나무는 태풍을 만나 쓰러졌다. 모두 흙으로 가고 있다.
#3 이 세상 70억의 사람 중, 오늘도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왔던 길로 떠났다. 사람이 사라진 빈자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바쁜 일상으로 메워진다. 사라진 나무들의 빈자리는 새로운 나무들로 채워지고, 숲은 언제나 숲으로 보인다.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물이 흘러간 그 강엔 또 다른 물이 흐른다. 사람도 강물같이 떠나면 다시 올 수 없다. 소멸의 길로 가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 바람이 공간을 채운다.
세월이란 강물 속에 생명들은 떠내려가고 있다. 나는 어느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이 지구, 이 우주 어는 한곳도 내 것은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공기를 밀어내고 잠시 머무는 것일 뿐이다. 내가 떠난 자리는 바람으로 채워지고, 살면서 이루었다는 모든 것들도 일순간에 사라진다.. 생명이 다하면 흔적도 없다. 있지 않았던 것처럼, 오지 않았던 것처럼... 삶은 스치는 바람같은 것일까. 정두효 201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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