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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에세이 스토리지

엄마들의 눈물

by 옐로우 리버 2018. 9. 21.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들의 눈엔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다. 징병제인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상황인 듯했다. 춘천시 외곽 제2보충대 정문 앞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입영자들은 모자를 쓰거나 까까머리로 모여들었다.

처 조카의 입영식을 기다리며 40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입영전날 6km쯤 떨어진 친구를 찾아가 밤새워 술을 마시고, 마을이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러댔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깜깜한 밤, 산골마을 뒷산 너머엔 별빛이 무성했다. 친구들과 대구에서 머리를 깎고 하루 밤을 보냈다. 다음 날 50사단에 입대하여 훈련이 시작됐다. M1소총은 무겁기도 했다. 가혹한 얼차례로 밤이면 구타당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시절이다. 식사시간엔 국물 한 국자라도 더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빵 한 조각을 더 먹을 수 있다면 화장실에서라도 좋았다. 훈련병은 춥고 배고프다는 말이 실감 났다. 월남이 패망하고 사이공(호치민 시)이 월맹군에 점령되자 대부분 지식인들은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다. 공산베트남을 탈출한 한 대학생은 수용소에서 만났던 교수가 밥 한 숟갈을 더 먹으려다가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는 어느 누가 배고픔 앞에 당당해 질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의 국방력은 세계 9위권이다. 과거 월남과 같은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국가에 기여해온 젊은 사람들의 희생의 대가다. 입소식이 끝나고 강당으로 이동이 시작됐다. 이곳저곳에서 자식. 애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들이 연병장 허공에 흩어졌다.  오늘 흘리는 엄마들의 눈물은 수많은 외침(外侵)으로 자식을 잃었던 슬픔이 만들어낸 유전자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정두효


※ 지금 2보충대는 그 자리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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