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줘…' 여자 친구가 와락 내게 다가왔다. 대 낯에 남녀 친구들 20여명은 있는 대로에서……. 나도 웃으며 팔로 안았다. 모두 웃고 있었다.
달빛 신작로를 걸었다. 포장도 되지 않은 도로는 하얗게 빛을 품어냈다. 걸어온 길을 뒤로 하며 달빛과 함께 이웃 마을로 마실을 다니곤 했다. 늘어선 가로수는 달빛 그림자를 길 밖으로 밀어냈다. 20대 시절 마을간 이동은 걷는 것이었다. 시골 총각처녀들은 남의 마을 가기를 좋아했다. 이런 관습은 초등학교 때부터 익혀온 것들이다. 어느 날, ‘야! 우리 집에 가서 하루 밤 놀다 오자.’ 요청을 받으면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친구마을로 갔었다.
봄날 밤 신작로를 걸으면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봄보리는 달빛을 받아 희끗희끗 빛을 발했다. 산그림자 따라 마을에 들어서면 작은 방에서 동창 모임이 열린다. 이런 모임은 남녀가 같이 했다.
군대 생활 중 한 친구가 면회를 왔다. “그 여자 동창생 말이야, 여기 가까운 곳에서 사는데 한번 만자보자.” 그 친구와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멀지 않는 곳에 동생과 살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가까운 유원지에 갔다. 모래밭도 거닐고 보트도 탔다. 그녀는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그 이후 모임 같은 곳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 십년이 지나고 어떤 친구의 딸 결혼식에서 만나게 됐다. 동창들 모두가 어느 식당에서 다시 모였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았었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수 십년 전 어느 여름날 밤, 내가 자전거 뒷자리에 자신을 태우고 들판을 지나 자신의 마을 입구에 데려다 준 것을...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