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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그리움이...

봄이 오면 고향 생각이...

by 옐로우 리버 2025. 3. 22.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어쩌면 이미 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봄을 준비하는 공원관리인의 갈구리 끝에서는 파란 새싹이 빈틈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이 겨울동안 풀씨들의 보온 역할도 했으리라. 마른 잎을 치우는 것은 관리인들의 힘을 들어주는 것이고, 풀들에게는 맘껏 햇볕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일까.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긴 하지만 만물이 봄 준비를 끝낸 둣하다.. 겨울동안 찬바람에 말라버린 세상만 봐왔다. 가로수는 헐벗고 마른 잎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찬바람을 맞는 삭막한 계절이었다.
겨울의 습설은 도시와 산의 소나무들을 주저앉게 했다. 큰 가지들이 찢어지고 나무가 통째로 꺾어져 처참하기까지 했다. 무성한 가지를 자랑했던 나무들의 피해가 더 컸다. 경사진 개울가에서 있던 나무들은 더 습설의 무게에 취약했다.
추운 겨울, 머무는 듯 했던 시간 속에도 지구의 자전. 공전은 지속되었고 태양이 은하계를 도는 활동도 변함이 없다. 지구를 떠난 보이저 호는 240억 킬로미터를 계속 날아 성간공간을 향해 가고 있다.
작은 변화가 있었어도 자연계의 순환은 끝임없이 이어졌다.. 봄이 다시 찾아왔다. 내주 약간의 싸늘한 날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지나면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봄은 어떤 봄이 될까.
온 세상이 녹색의 옷을 입는 봄은 생명들로 활력이 넘친다.옛날의 봄은 진달래의 계절이었다. 지금은 개나리 벚꽃이 세상을 뒤덮지만 옛 시골의 봄은 앞뒤동산 진달래에서 시작됐다. 마을 얕은 산에 피는 진달래는 봄의 전령이었고,  온산을 붉게 물들였다. 진달래꽃은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잎을 따서 먹으면 싱그럽고 상큼한 맛으로 입속을 벌겋게 물들이곤 했다.
진달래가 지면 시골도로와 들판에 쭉쭉 뻣은 버드나무는 고향의 상징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있었고 잔가지는 봄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가지들은 잘라져 물이 고인 논에 뿌려졌고 부패된 가지들은 벼의 영양분이 되었다.
강가에 물오른 버들가지는 아이들의 피리가 되어 삐삐삐 삐삐~ 고향의 소리를 냈다. 진달래와 버드나무는 고향을 상징이었다. 버들피리 불어대던 고향들판. 강변의 봄은 언제나 마음속에 머물러 오고 있었다.
봄이 오는 들판은 파란보리가 싱싱한 색깔로 뒤 덮였다. 바람이 불면 온 들판은 초록의 보리 잎이 줄렁이는 바다였다. 보리는 춘 곤기를 넘기는 작물이었고, 언덕 밭에도 넓은 들판에도 가득했다.
수확기가 되면 도리깨질이 온 마을을 덮었다. 도리께 질에는 식구 모두가 동원되었고 머슴들에게는 중 노동이었다.
세상의모든 것은 박자의 이치를 담고 있다. 운동에도 박자가 있고 도리께 질도 박자에 맞춰 두들겨졌다. 상대과의 호흡 속에 뒤집기를 반복하며 낱알을 털어냈다. 박자는 어느 정도 힘든 노동을 견디게 하기도 했다. 박자는 노래이니까.
도리께 질이 시작 될 때는 따뜻했던 햇볕이 따가운 빛으로 바뀐다. 향수라는 가곡에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이란 구절이 있다.
보리이삭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먹거리이기도 했다. 가곡에서 의미하는 이삭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리밭을 다니며 이삭을 주었었다.
어릴 적 고향집 한편에는 토끼가 있었다. 나무판자를 모아 만든 토끼집은 주택모양의 지붕을하고 있었고 네 개의다리도 있었다. 앞면에 문이 있었고 내가 만든 집이기도 했다.
날마다 집주변 들길에서 풀을 뜯어 먹이곤 했다. 토끼의 성장은 빨랐고 새끼를 낳기도 했다. 새끼들이 자라서 풀을 먹는 모습은 참 귀여웠다. 옛날 시골생활은 토끼 외에도 동물과 함께하는 생활이었다. 마당엔 항상 닭들이 꾸꾸 소리를 내며 다녔고, 뒷뜰엔 꿀꿀~돼지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외양간엔 큰 덩치의 소가 ‘음메 음메’ 소리를 냈었다.
집을 나서면 봄풀들이 길옆을 채우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은 정겨웠다.
이름 모를 잡초들이 땅위에 촘촘이 자라서 꽃을 피웠다.
최근에 운동을 가서 '풀잎'이란 이름을 가진 도우미를 만났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봄풀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이름이라고 말해줬다.


봄이 오고 세상이 초록으로 덮여 가면 고향이 그리워진다. 봄바람이 불어오던 강변. 들판이 그립다. 그리고 진달래가 피던 뒷동산이 생간난다.
옛날과는 모든 것이 달라 졌겠지만 들판엔 봄바람이 불고,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온갖 초목이 깨어나는 이런 계절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어릴 때 뛰놀던 산과 들을 걷고 싶어진다. 어느 한 친구가 그랬다. 선배는 추억이 많아서 좋겠다. 도시에 자란 사람이라면 그럴 것 같다. 맞는 말이다. 고향에 대한 기억들은 언제나 삶에 위로가 되어 주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은 계절을 넘나들지만 봄날엔 더 생각이 난다.
텃밭을 계약했다. 고향에서의 봄과 같이 봄밭에 씨를 뿌리고 채소를 심어 고향 같은 봄을 보내야 겠다. 정두효/ 202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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