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올랐더니 하얀 세상이 햇빛에 반사되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검은 옷과 파란하늘 백색의 눈은 갑자기 다른 세상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겨울산은 일상과 다른 경험을 느끼기 위해 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일기예보에는 많은 눈이 예보되어 있었다.
해가진후 날씨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밤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찼다. 어둠이 짙어오자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겨울 내내 쌓인 눈이 1미터는 되었고, 그 위에 다시 쌓여갔다. 부드러운 눈이 하늘에서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밤새도록 흘러 내렸다.
7년 만에 덕유산으로 갔다.
그때는 반대편 삿갓 재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눈 내리는 10킬로미터의 능선을 오르며 정상에 섰었다. 이번에는 무주스키장에서 곤돌라를 탔다.
긴 시간 눈 속을 걷는 것에 부담이 되어 서다. 곤돌라가 멈추고 내렸더니 하얀 세상이었다. 파란 하늘과 눈 덮인 산은 신비스런 모습이었다. 산 아래서는 볼 수 없던 관경이었다.
흰 눈 덮인 세상을 보기위해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소백산. 태백산 등 대피소가 있는 곳을 모두 찾아 다녔다.
두 번째 찾은 덕유산도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정상인 향적봉을 향해 걸었다. 산언덕 마른 숲에는 나뭇가지 마다 눈이 소복이 쌓여 발길을 멈추게 했다.
향적봉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해발 1614미터, 산정상은 언제나 그랬다. 주변 산들이 멀리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눈 덮인 산들이 끝없이 펼쳐 저 있었다.
파란하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흰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맑고 아름다웠다
중봉을 가는 길은 앞사람이 만든 길을 따라 갔다.
눈길은 좁았고 사람이 마주 올 때마다 적당한 곳에서 피해줘야 했다. 나무 밑 부분은 눈 속에 파묻혀 있어 넘어지면 위험할 것 같았다.
언덕을 넘고 커브를 돌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돌아올 시간엔 해가 기울고 있었다. 겨울 산에서는 하루해가 금방 넘어 간다. 대피소에서의 하룻밤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었다.
해발 1500여 미터에 자리한 그곳은 언덕아래에 있었다. 건물 주변은 온통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침실은 한 공간에 있어 좁고 불편하지만 집 떠나면 겪는 일이다. 대피소는 9시면 소등이다. 잡답을 해서도 안 된다. 작은 소리도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20여 명 중 한 사람의 코고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더니 조용해 졌다. 화장실을 30~40미터 떨어져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내일 돌아갈 일이 걱정됐다. 그동안 녹지 않은 눈 위에 다시 눈이 쌓이고 있으니 그렇다.
잠을 제대로 못잔 사람도 있고, 하룻밤을 잘 보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귀마개를 갖고 다닌다. 혹시 뜬눈으로 밤을 보내야하는 사태에 대비해서다.
날이 밝아 밖으로 나왔더니 쌓인 눈높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눈보라가 윙윙 소리를 내며 산등성이를 넘어 오고 있었다.
아침을 해결하고 내려갈 길을 재촉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대피소 밖 테이블에는 먼저 떠났던 두 사람이 돌아와 있었다. 눈이 많아 길을 찾을 수 없고, 정상에 바람이 너무 강해 다시 왔다고 했다.
돌아 왔던 사람들과 향적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추운날씨에도 등에 땀이 배었다. 한참을 오른 정상에는 눈보라가 강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 시간여 만에 곤돌라 타는 곳에 도착했다. 위험하다며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곤돌라는 계속 테스트를 하고 있었고, 눈보라 속에 우리는 떨며 기다렸다. 이해는 가지만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한참 후 건너편 화장실 문을 열어줬다. 한참을 시운전 하고 나더니, 오늘은 곤돌라 운행 중지라고 했다. 강풍에 흔들리면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눈 속에 길이 다 덮여 버렸는데 어떻게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다시 대피소로 돌아가서 하룻밤을 머물러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다시 그 길을 올라가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모든 길이 통제되어 다른 길로 내려 갈수도 없었다. 한 젊은이가 스키슬로프를 따라 내려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여섯 사람이 출발했다.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눈보라가 거셌다. 좌우로 방향을 돌때마다 눈보라가 뺨을 때렸다. 모두가 아프다며 머리를 반대방향으로 돌리면서 걸었다. 눈보라를 맞아 얼굴이 아픈 경험은 처음이었다. 쉴 새 없이 뺨을 때리는 눈보라는 하산이 끝날 즈음에야 멈췄다.
거의 2시간을 걸어 내려왔다.
눈이 내린 산을 찾아 산으로 가곤 했다. 눈 오는 산을 걷는 것은 힘들지만 보람도 있다. 사람들은 숨을 헐떡이며 추운 산을 오른다. 그것은 일상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일 것 같다. 힘든 경험 일수록 강한 추억으로 남아 다시 가게 되는 것 같다. 눈 덮인 능선을 따라 걸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봄. 여름. 가을 산은 어떤 모습일까, 겨울 못지 않는 멋있는 산을 상상하기도 한다.
눈 내리는 산을 오르는 것은 무엇보다 같은 마음을 가진 동료가 있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정두효/ 2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