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해가 졌다.
겨울 하루는 짧다. ‘아침이다’ 했는데 금방 하루가 간다. 햇볕은 따스했고 바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겨울. 사람들은 두둑한 패딩을 입고 거리를 걸었다.
하루해가 넘어가는 저녁. 석양은 부드럽고 겸손했다. 서쪽하늘을 붉은 빛으로 조용히 빛났다.
해가 있어 하루가 있는 것인데, 마지막 끝맺음을 하는 석양은 감동이다.
어쩌면 여름날의 석양이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강력한 열기를 품어 됐으니 석양도 강렬한 것은 당연한 것일 게다. 겨울 석양은 다소곳한 면이 있지만 그 화려함은 어느 계절 못지않다.
석양이 그 예술성을 발하는 것은 태양이 하는 일이지만 지구의 역할이 크다.
바람과 구름과 바다와 산과 초원 그리고 흐르는 강물이다. 석양은 지구가 만들어낸 온갖 물체에 빛을 발하며 그 오묘한 작품성을 드러낸다.
높은 산마루에 지는 해는 얼마나 애처러운가. 바다멀리 수평선에 떨어지는 해는 얼마나 허무한가.. 흐르는 강물에 떨어지는 해는 얼마나 슬픈가. 초원 넘어 걸린 석양은 얼마나 아쉬움을 주는가.
수채화보다 더 현란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그 색상은 인간이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해는 서쪽으로 다가 설수록 빛의 연출을 시작한다. 주황색의 빛은 점점 더 진한 황토색을 띄어 가며 구름과 산과 어울러져 하늘을 수놓는다.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늘을 볼 기회가 없다. 어둠이 밀려들면 온 도시는 전깃불로 환하게 밝혀진다. 사람들은 도시의 불빛과 함께 밤을 시작한다. 높은 건물들로 빼곡한 도시는 인간에게 하늘을 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도시를 벗어나면 하늘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머리를 들면 하늘이고 시야를 낮추면 동서남북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스름이 다가오면 붉게 변해가는 서쪽하늘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석양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구름이다.
구름은 빛을 빌려와 때로는 붉은 궁전을 만들기도 하고 높고 깊은 절벽을 만들어낸다. 고대 신전의 오베리스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바람은 석양과 구름이 만든 작품을 순식간에 허물어 버리고 높고 큰 성을 만들어 낸다.
해가 지평선을 넘어갔어도 갑자기 칠흑의 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더 붉고 강력한 빛을 내품으며 온 하늘은 빨갛게 물들인다.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석양을 노래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석양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하루를 마감했을까.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석양을 보며 굳은 약속을 했을까. 석양은 감탄과 신비다.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도 석양에 대한 어떤 느낌이 있을꺄. 인간만이 느끼고 누리는 전유물일까. 해가 하루를 마감하면 검은 하늘엔 별들이 반짝인다. 강렬한 햇빛에 숨죽였던 별들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태양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해는 빛을 양보하고 밤하늘을 별들에게 맡긴다. 정두효/ 202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