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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에세이 스토리지

내 안에 흐르는 강

by 옐로우 리버 2018. 1. 22.


 

 

강은 때로는 폭력을 휘둘렀다. 먹구름이 밀려와 폭우를 쏟아내고 황토 빛 물은 주변 모든 것을 휩쓸며 사람의 목숨도 앗아갔다. 강이 화를 풀면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였고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여름 날 하루해가 서산에 지고 어스름이 밀려오면 아이들은 소 등에 올라 개선장군처럼 강을 건넌다. 왼손엔 소꼬리를, 오른손으론 고삐를 쥐고  노을이 물든 강을 건너 집으로 간다. 버드나무 숲속을 다니며 소가 풀을 뜯는 동안 아이들은 모래밭에 뒹굴며 공차기. 술래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이 소 등에 타고 콧노래를 부르는 것은 소몰이를 잘 했고 허기진 배를 채울 시간이 눈앞에 와서다. 소등과 닿은 엉덩이에서 느끼는 따스함은 소와 주인과의 교감이며 안온한 행복이었다.

 

#강변 모래밭에 앉으면 노을이 서쪽하늘에서 물들어온다. 옅은 노을은 오렌지색으로 짙어가고, 붉은 해의 기둥은  강을 건너 아이가 앉은 물가에 닿는다. 강도 아이의 얼굴도 놀빛에 젖는다. 흐르는 강물엔 튀어 오르는 고기들이 반짝 이고, 해가 사라진 서쪽 하늘엔 이곳저곳 별들이 나타난다.

밤이면 아이들은 몰려나와 목욕을 했다. 쏟아지는 별들은 물속에 잠기고 아이들은 한 낮의 땀을 씻어냈다. 강물에 누우면 하늘 멀리 은하수가  강이 되어 반짝인다. 몸을 닦고 홑이불에 누워 눈 감으면 지친 몸은 어느새 잠들고, 방바닥은 모래알, 천정은 별들의 군무로 생명이 넘친다. 달 밝은 밤엔 강물 흐르는 소리 쪼르륵 쪼르륵~ 은모래는 고운 빛을 뿌린다.. 모래밭에 잠든 새벽, 옷은 이슬에 젖고 몸은 무겁기만 했다. 아이들은 좁은 집보다 강변의 밤을 좋아했다. 강은 한 폭의 고운 수채화였고 마음의 쉼터였다.

 

#물속은 언제나 피라미들이 떼 지어 강을 오른다. 얕은 물에 사는 고기들은 아이들의 밥이었다. 짧은 막대기를 들고 고기를 잡고, 낚싯대에 타닥타닥 느껴지는 입질의 진동은 희열이었다. 주전자에 들어간 피라미들은 서로 부딪히며 탈출구 찾기에 바쁘다. 뚜껑을 열면 어느새 튀어 올라 나 보라는 듯 물속으로 사라진다. 주전자를 가득채운 작은 어부는 낚싯대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향한다.여름이 다갈 즈음 얕고 조용한 강은 태풍이 몰고 온 홍수로 아수라장이 된다. 물의 횡포가 잦아들면 아이들은 강으로 나간다. 언덕 위 발가벗은 몸들이 줄지어 황토물속으로 점프한다. 아이들은 물이 흘러가는 대로 둥둥 떠간다. 구릿빛 얼국의 아이들은 깔깔대며 즐겁기만 했다강은 언제나 아이들을 품고 흘렀다.

 

강 언덕에 앉아 그때의 강을 본다. 소등에 올라 강을 건너는, 고기를 잡으며 목욕하던, 홑이불 달빛아래 잠든 아이. 강변에서 여름을 보내던 많은 사람들을 본다. 모두 이곳에서 살며 추억을 만들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영겁 속에 묻혔다. 내 안에 흐르는 강은 오늘도 영원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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