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 여행은 기다림 후의 결실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우리가족 9명은 영주로 갔다. 그곳에는 부석사. 소수서원 등 가볼만 한 곳들이 있어서다.
가족 중에는 손녀. 손자가 4명으로 제일 큰 아이가 여섯 살이다. 코로나이후 주거지에만 머물던 삶에서 벗어나는 일정이었다. 3시간을 넘게 달려 무섬마을에 도착했다.
내성천 주변에 자리 잡은 그곳은 초가와 기와집들이 있었다. 가을날에 딱 어울리는 시골의 강변마을 풍경이었다.
골목어귀마다 가을꽃이 만발해 있었다. 호랑나비 한 쌍이 한가롭게 꽃을 옮겨 다니며 노닐고 있었다.
맑고 파란하늘 아래 초가지붕은 어린 시절 고향을 생각나게 했다. 친구들을 찾아다니던 그런 골목길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성천을 가로 지르는 외나무다리를 찾아왔다.
대부분이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었다. 다리 아래를 지나는 물살은 빨랐고 사람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강을 건넜다.
고향의 황강을 가로지르던 섶다리가 생각났다. 섶다리는 교차통행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홍수에 대비, 매년 다리를 철거하고 새로 짓는 작업이 반복됐다. 이곳 외나무다리는 굵은 기둥에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걸처져 이어져 있었다.
상류댐의 영향으로 물은 탓했고 모래도 하얀 색깔에 눈부신 그런 것은 전경은 아니었다. 물은 모레위를 흘러야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이다.
고향의 황강도 합천댐이 들어서면서 그 넓은 모래사장. 맑게 흘러가던 물이 퇴색되었다.
늦게 선비촌에 도착했다.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의 저녁은 맛있었다. 식후 숙소를 안내 받았다.
만죽재 고택은 1666년에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주변에 고택들이 많았지만 이곳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안채에는 넓은 대청마루가 있고, 사랑채에도 툇마루가 있는 품위 있는 집이었다. 아이들은 넓은 대청마루와 안마당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도시에서는 마루와 마당과 하늘이 탁 트인 집을 볼 수 없다. 대청마루에 앉아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느꼈다.
사랑채 밖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어둔 하늘에서 달빛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도 즐거워 했다.
350여 년 전에 이런 집에 살았던 사람은 얼마나 부자였을까. 엄청난 건축비가 들었을 것 같았다.
기둥은 반듯반듯한 사각형이고 지붕을 받히는 서까래도 굵고 튼튼했다. 보수된 흔적이 곳곳에 있었지만 마루바닥 조립은 대단한 기술 같았다. 건축에 무지한 내가 보기엔 그랬다.
안채와 사랑채는 경사가 있는 곳에 시각형 형태로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한쪽이 기울면 집 천체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주축돌이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죽재 고택에는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오랜 기간동한 어떤 사람들이 살다가 갔을까 궁금했다.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침을 맞아 아이들은 앞마당. 뒤뜰에서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즐거워했다. 선비촌 옆에는 소수서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석사는 높은 곳에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오르기에는 조금은 가팔랐다. 손녀들은 몸부림을 치며 오르는 길을 지겨워했다. 할아버지 언제까지 가는 거야. 조기 앞까지 가면돼. 아니잖아 언제까지 걷는 거야. 할아버지 힘들어. 힘들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양손에 손녀들을 잡고 같은 말을 반복해가며 올랐다.
무량수전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특이한 기둥모습이 유명하지만 …….
부처님은 힘들게 올라온 중생들을 위로하듯 잔잔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앞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은 멀고 아늑했다.
마당 배나무아래에는 젊은 스님이 땀을 흘리시며 배를 따서 나눠주고 있었다. 모두가 둘러서서 배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무거운 장대가 힘겹게 보였다. 고마운 일이었다. 우리 손녀들도 하나씩 받았다. 이렇게 큰 배나무는 처음 봤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손녀들은 어른이 돼서 다시 올 수 있을 게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와 이곳에 왔던 기억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정서가 보관되는 뇌 한 곳에는 오늘의 이 시간들이 저장되리라 생각된다.
정두효 / 202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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