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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여행 이야기

바람의 언덕

by 옐로우 리버 2018. 1. 22.


 

 

정상에 오르자 거센 바람, 눈을 뜰 수도, 서 있을 수도 없다. 사람들은 술 취한 것처럼 좌우로 밀리며 비틀거린다. 인증 샷도 힘 든다. 핸드폰을 든 손이 계속 흔들린다. 몇 컷을 반복해서 찍는다. 과연 제대로 찍혔을까, 걱정이 된다. 남의 사진도 찍어 줬는데... 욕먹지 않을까, 바람의 힘은 거대한 생명체의 분노 같았다.

 

오전 8, 버스에 오른다. 낯선 사람들이다. 한참을 달려야 대관령에 도착한다. 뒷자리 창가에 앉아 밖을 본다. 커튼으로 닦고 닦아도 창은 얼고 또 얼어 밖을 볼 수 없다. 그래도 닦으며 차창을 본다. 앞뒤 모두 구면인 사람들로 얘기를 나누 너라 부산하다. 머쓱한 생각이 든다. 그 정도는 생각하고 왔다. 선자령을 오르며 시원하고 탁 트인 산을 보고 싶었다. 눈 쌓인 계곡과 그 속에 헐벗은 나무들을 보며 걷고 싶었다. 간단한 준비 운동 후에 산에 들어선다. 산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고,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은 영롱한 소리를 냈다. 누가 한마디 던진다. 마셔도 되겠다고, 어린 시절 황강 물을 퍼 다가 그냥 마셨던 생각이 난다. 그 때의 강물은 지금 지금 산속 물만큼이나 깨끗했다. 흰 눈에 포위된 나무들은 얼음 같은 계곡에 조용히 그림자를 내리고 있다. 천천히 녹아내리는 눈은 땅속으로 스며들며 나무들을 키우고 지하의 강이 되어 흐를 것이다.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은 거센 바람이 흔적을 지운다. 계곡을 벗어나자 센 바람이 불어온다. 땅에 있는 눈들이 솟아올라 아래로 곤두발질 친다. 걷기도 힘이 든다. 몇 백 미터를 걷자 풍력발전기 날개가 확 다가왔다. 40m나 되는 거대한 날개가 센 바람 속에서도 느릿느릿 돌아간다. 우측으로 오르자 앞서가는 사람들이 몸을 낮추고 휘청거린다. 휙 바람이 불면 밀려가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눈 속에서 넘어지며 산을 오른다. 키 작은 나무들은 비틀리고 일그러져 떨고 있다. 어쩌다 이곳에 씨가 뿌려져 모진 세월을 견디고 있는지, 밤이 와도 잠도 못자고, 언제나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 같다. 정상에는 눈도 없다. 모두 바람에 날아가고 언덕을 넘어오는 눈보라로 앞이 안 보인다. 사람들은 서둘러 왔던 길로 돌아간다. 모두가 비틀비틀 휘청 거린다.

 

산을 오르는 중 두 사람을 만났다. 앞뒤로 걸으며 얘기도하고 밥을 같이 먹었다. 한 사람이 그랬다. 선자령은 눈과 바람만 있는 곳이라고... 맞는 말이었다. 그 곳은 눈과 바람이 점령한 언덕이었다.                                                                                                  정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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