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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에세이 스토리지

땅벌들의 습격

by 옐로우 리버 2019. 5. 16.

땡비는 집요했다. 우리는 그냥 길을 갔을 뿐이었다. 우리들 발자국의 진동, 얘기소리 파동이 그들을 자극했을수는 있었다.

엄마와 우무실 밭에서 고구마 몇 뿌리를 캤다. 어린시절 어느 해 초가을이었다. 고구마는 아직 여물지 않아 엄지손가락 두 개를 합친 크기였을 것이다. 날씨는 화창했고 좀 덥기까지 했다. 약간은 여름, 약간은 가을 냄새가 있는 그런 날이었다. 엄마는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나는 뒤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초등학교 앞을 지나 파출소 우측의 언덕을 돌아 올라갔다. 늘 학교를 다니는 길이기도 했다 산길을 조금 걸으면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그 막다른 평평한 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갑자기 윙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땅벌들이 우리를 공격해왔다. 엄마와 나는 무작정 뛰었다. 언덕을 다 내려오도록 벌들의 추격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집을 지나쳐 강으로 도망쳤다. 모래사장에 이러르서는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벌써 몇 군데를 쏘였다. 엄마는 자신을 방어할 겨를도 없이 나한테 달려드는 벌을 쫓기에 바쁘셨다

얼마 후 벌들이 사라지고 집으로 왔다. 얼굴. , 다리 이곳저곳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참 삶이 어려웠던 시절, 병원치료는 할 수도 없었다나는 발가벗은 채로 온 몸에 꿀을 바르고 누워있었다. 다음날 학교도 가지 못했다. 마당에 친구들이 와서 놀고 있었지만  바라보기만 했다.

벌에 쏘였는데 꿀을 발랐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며 벌독이 수그러들었다. 작은 땅벌에 쏘였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말벌이었으면 큰일 났을 것이다. 벌들이 그렇게 사람을 멀리 쫓아 오는 줄은 몰랐다. 우리가 해를 끼친 것도 아니었는데, 먼 옛날의 추억이고 벌떼를 쫓아주시던 엄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이제 옛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다. 정두효 2019/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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