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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에세이 스토리지

'내 이름은 아버님'

by 옐로우 리버 2019. 3. 10.

40대 초반 정희씨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무언가 호칭이 필요했다. 우리 조의 여성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님이 된 것이다. 토요일 요리 반은 8개 조로 되어 있다. 내가 나타나자 모두들 의아해 했다. 나이께나 든 남자가 요리 반에 왔으니 그랬을 것이다.

수업은 철저히 협력체제다. 두 시간에 3가지 반찬과 요리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언제나 시간에 쫓긴다. 아버님. 아버님 맛보세요. 희정씨가 완성된 반찬을 입에 넣어준다. 공무원인 그녀는 키가 작지만 하는 일이 다부지다. 간이 어때요, 파를 다지고 있는 내게 소스 맛을 보여준다. 좀 싱겁죠, 친구야 소금 조금만 더 넣어, 건너편 수정씨에게 부탁한다. 쇠고기 구운 가지나물은 소금을 조금 넣자 맛이 확 달라졌다. 아버님 어때요 맛있죠, 나중에 좀 가져가세요, ㅎㅎㅎ

바로 옆 큰 냄비에는 간장소스를 넣은 닭이 조려지고 있다. 선생님은 집에서 만들 때는 중닭으로 하라고 했다. 닭이 조려지다 드러나면 뜨거운 물을 계속 보충하고 닭 발목이 1cm 정도 당겨지면 다 된 것이라 했다. 다 익힌 후엔 10분 정도 뚜껑을 닫고 기다리라고 했다. 습도 유지를 위해...

희정아, 어서 뚜껑 덮어, 10분이 가고 뚜껑이 열렸다. 먹음직스런 닭조림이 큰 쟁반에 담겨졌다. 그릇을 씻고 있는데 벌써 먹느라 정신이 없다. 아버님이 맛보기도 전에 먼저 먹으면 되남, ‘아버님 빨리 드세요,’ 한 젓갈 입에 넣어본다. 허겁지겁 먹던 것이 이해가 갔다. 담백하고 맛있었다. 4명이 닭조림 한 마리를 거의 다 먹었다.

요리는 서로 대화를 통해 소통하며 만들어간다. 서로 맛을 봐주며 맛나는 음식을 만들어 간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자연스럽게 같이 가는 작업환경은 특이하다. 8개조가 계량용기로 같은 조리를 해도 색깔도 맛도 약간은 다르다. 손맛이라고 할까, 주방 정리가 되면 쏜살같이 사라진다.

오늘은 식용 꽃전도 만들었다. 찹쌀 반죽으로 모양 좋게 만들어 한 면을 지진 후 뒤집어 꽃을 붙이고 고정한다. 다시 그 면을 지지면 예쁜 꽃전이 만들어진다. 꽃 밥은 먹어봤지만 전은 처음이었다.  정두효/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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