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 높은 구름,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인다. 오늘 같은 날은 무작정 걷는다. 공원에 들어서면 꽃들이 피어나고 바람과 하늘. 나무들을 만난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걸음마다 추억들이 지나간다.
멀리 산성 성벽엔 사람길이 보인다. 동쪽으론 하남의 높은 산이 한강으로 흘러내리고, 예봉산은 하늘에 떠 있다.
이렇게 맑은 날 길을 가면 잊혀져간 사람들을 만났으면 하는 허망한 생각을 한다.
망월봉에 올랐다. 먼지하나 없는 바람이 언덕을 넘어 간다. 구릉지에는 고운빛의 잔디가 푸르게 펼쳐졌다. 끝자락엔 문화제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보리와 벼가 자라고 감자와 목화가 꽃을 피우던 밭은 파헤쳐져 세월이 가고 있다. 1천년을 찾는 것인지, 2천 년 전 백제를 찾는 것인지 답답하다. 온조의 터에 무엇이 있을까, 기자촌아파트가 남한산성을 배경으로 벽을 치고 있다.
북동쪽은 초록의 맑음이 있어 좋다. 이곳은 도시의 끝자락 이어서 계절이 오면 푸르다. 아파트 뒤로 펼쳐진 야산과 언덕들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북서쪽 올림픽대로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달린다. 도시의 삭막함은 차들의 홍수 속에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엔 사라져간 추억들이 떠오른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그리운 것들은 꿈이 되어 간다. 세월이 갈수록 모든 것들이 가슴 속에 묻혀 갈 것이다.
헤어져 세상을 떠난 사람들, 멀리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날엔 마음속을 파고든다.
하늘이 높은 날엔 그리움들이 산 너머 바람처럼 밀려든다.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들이 멀어져 간다. 구름이 멀어져 간다. 정두효/ 2019.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