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봄날이다. 낮 기온이 영상5도나 된다. 그저께 산에서의 추위는 대단했다. 세찬 바람에 얼굴이 찌릿찌릿했다. 순간적으로 얼어버릴 것 같았다. 산행에는 고통도 즐거움도 있다. 고통이 없다면 어떻게 야성의 바람과 눈 덮인 산, 먼 산 넘어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을까,
1200m 고지, 매서운 바람 속에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붉은 하늘은 아름답고 허무 했다. 과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산 하나를 만들 수 없고, 장엄한 자연은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저무는 해는 아련히 겸손했고, 모두들 밀려드는 감동으로 말을 잃었다. 수 십 명이 함께 하는 대피소는 9시에 소등이다. 여자도 남자도 한 공간에서 밤을 보낸다. 한마디 말을 나누지 못해도 6천겁의 인연이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다. 흰 구름이 찬바람을 타고 산언저리를 넘어간다. 바람의 속도는 구름으로 보인다. 일출은 힘차고 장엄했다. 얕은 구름위로 태양에너지가 넘쳤다.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산들이 드러났다. 빛은 하루의 시작을 가져왔다.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길은 온통 얼음판, 나무들은 상고대를 뒤집어쓰고 아침햇살에 반짝인다. 얼음 가루들이 빛을 받아 쏟아져 내린다. 눈앞은 온통 반짝반짝 은가루다. 백색의 세상이 눈을 뜨지 못하게 한다.
해발 1300m, 기온이 영하14도지만 체감은 20도가 더 될 것 같다. 천문대를 거쳐 비로봉 정상까지의 길이 멀리 구불구불 펼쳐저 있다. 모든 산들이 발아래 있다. 산 넘어 산이 있고 또 산 넘어 산이다. 좁은 국토가 넓어 보인다. 가야할 길은 몇 시간 거리다. 갖고 온 옷을 모두 입었다. 상의만 다섯 벌이다. 주머니 핫 팩은 차기만 하다. 산 언덕을 오르내리며 걸었다. 비로봉 1km 전, 나무는 없고 누런 풀들만 바람에 맞선다. 띄엄띄엄 주목나무들이 흰 눈밭에 녹색으로 견고하다. 멀리 정상에 사람들이 까맣게 보인다. 남은 길은 평탄하고 정상 몇 백 미터는 언덕이다. 멀리서 불어온 바람은 거침없이 사람을 때린다. 방해물이 없으니 바람도 가속이 붙는 것 같다. 헐떡임 속에 드디어 올랐다. 바람은 사람을 서 있지 못하게 한다. 머물 수가 없다, 8848m 에베레스트는 어떨까.
등산은 만남이 있다. 설레는 산 정상과 높은 하늘, 세찬 바람, 수많은 나무들...그리고 우리에게 문어와 김밥을 건넸던 사람들, 주막에서의 호박막걸리와 주인아줌마.
산은 언제나 감동을 주고 순수하다. 무언의 대화도 받아준다. 사람들도 친절하다. 겨울산은 힘들고 춥지만 추억은 따뜻했다. 2017년 2월19일
◇ 차거운 서쪽하늘 멀리 떨어지는 석양은 아름답고 허무했다.
◇ 정상으로의 길은 아득하고 산 등선을 휘감아 도는 바람은 거셌다. 겨울의 소백은 장엄하고 아름다왔다.
◇ 대피소에서 본 일출은 힘찼고 태양에너지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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