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간간이 나뭇잎을 스쳐간다. 잎들은 살랑살랑 끝머리 가지를 흔든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 어제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잎들은 찬비를 맞으며 시간을 견뎌내는 듯 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잎들은 오한이 저려오는 차가움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 녹색은 이미 멍이 들었을 것이다. 계절은 언제나 상전이를 거치며 전환을 가져왔다.
갑자기 북서풍이 불고 찬비를 쏟으며 가을은 순식간에 겨울을 노크 하곤 했다.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들이 써늘한 날씨에 노출되어 있다. 뿌리는 점점 수분 공급을 차단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다.
한해를 마감 하듯 봄과 여름을 만낀했던 나무의 열매도 모두 떨어졌다. 도로가에 줄줄이 선 은행나무도 딱딱한 열매를 모두 버렸다. 밤나무도 사과나무도 모두 씨앗을 남기고 시들고 있다.
그래도 초록은 아직 곳곳에 남아 있다. 세상이 녹색의 풍경을 모두 잃으면 삭막할 것 같다. 남은 초록이 색깔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창가에 서 있는 나무들도 곧 잎들을 보내고 말 것이다. 기온이 갑자기 내리면 다양한 색깔을 준비를 할 여유가 없다. 찬 기운을 맞은 잎들은 한꺼번에 멍이들고 떨어져 내린다.
설악산에도 덕유산에도 첫 눈이 내렸다고 한다. 상고대도 폈다고 한다. 아직 겨울이 올 시간은 아닌데 겨울 같다. 자연의 변덕은 추정을 불허한다. 갑자기 비가오고 북풍이 불고 기온이 떨어지면 가을도 없이 겨울이 오는 것이다.
가을은 천천히 오고 느리게 가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세상의 색깔들을 즐길 수도 있고, 식물들도 겨울을 준비할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장미, 들국화는 아직도 한창이다.
그들이 피어 있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멍이든 줄기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꽃들은 곧 모두 낙하 하고 말 것이다. 자연은 계절을 바꾸어 가면서 가혹한 흔적을 남긴다. 정두효 2022.10.11
하늘 바람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