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말했다. ‘청량리서 묵호 행 완행열차를 탔는데 참 좋더라. 차창의 경치도 좋고 바다도 멋있고...’ 귀가 솔깃했다. 그렇게 좋아, 한번 가야겠네, 나는 마음먹었다. 어느 날 혼자 배낭을 메고 동해로 가야겠다. 친구는 하루 만에 돌아왔다고 했지만 난 1박이 좋을 것 같았다.
11월도 중순, 오전 9시 열차에 올랐다. 특실은 절반이 비어 한산했다. 그래도 평일 날 이 정도는 괜찮은 실적 아닌가, 열차에 우리만 있었더라면 실망이 컸을 일이다. 여행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기대가 배가되니까. 출발시간이 되자 열차는 기적소리를 냈다. 얼마 만인가, 완행열차... 감격이었다. 차는 천천히 미끄러지듯 플랫폼을 벗어났다. 동해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열차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선로를 삼키며 달렸다. 서울을 벗어나자 들판을 달리며 산을 돌고 돌아 계곡을 지났다. 들판은 헹 하게 비었고, 산은 단풍으로 겹겹이 물들었다. 짙은 가을은 거기에 있었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느림보 완행은 멋있었다. 산을 물들인 온갖 단풍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어서다. 열차가 태백시에 들어섰다. 말은 들었지만 처음 보는 도시다. 계곡을 따라 늘어선 도시는 한참을 달려도 태백이었다. 도시는 호텔과 모텔이 줄을 이었다. 왼 산골 도시에 이렇게 숙박시설이 많을까, 신기하기만 했다. 도시의 끝머리에 닿자 ‘강원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숙박시설이 많은 것이 이해가 됐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한숨과 탄식이 있었을까.
묵호의 논골 마을은 아슬아슬했다. 골목길을 오르다가 뒤돌아 보면 어지럽다. 가파른 길은 이곳저곳 골목으로 이어진다. 깎아지른 절벽에 용케도 터를 닦고 집을 지었다. 마당이 있는 집도 없는 집도 있다. 있는 집은 저택이다. 마당 끝은 절벽이다. 비오는 밤엔 잠이 올까. 눈 오는 날엔 이동이 가능할까. 신기하고 아찔했다, 골목은 골목으로 이어져 나갔다. 길은 등대와 맞닿았다. 바닷가에 잡은 숙소 앞엔 밤 파도가 하얗게 밀려오고 나가고 있었다. 먼 바다엔 달이 둥실 떴다. 달은 외로웠다. 밤바다를 보며 친구와 나누는 술 한잔은 행복이었다. 둘이 하는 여행은 외롭지 않다. 파도는 꿈속에서도 밀려오고 밀려가며 솨쏴 솨쏴~~ 소리를 냈다. 검은 바다는 무섭기도 했다. 정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