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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천지에 꽃씨를 뿌리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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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길

by 옐로우 리버 2022. 5. 1.

길을 나섰다. 어둠이 내려앉는 초저녁이다. 먼 하늘엔 띄엄띄엄 별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었다. 날씨는 선선하다.

마치 가을 밤 같았다. 공기는 맑고 상쾌하기까지 했다.

발길이 가벼워 왔다. 1km쯤 걸어볼까. 이미 헬스장에서 1시간을 걸었으니까.

그냥 도로 위를 걸었다. 넓은 길을 차들이 쌩쌩 달리고 멀리 빨간 신호등이 들어왔다. 차들이 끊어지자 도로가 조용해졌다. 길가엔 노란 차들이 즐비하다. 학원 수업이 끝났는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온다.

젊은 여자들이 학생들을 작은 버스로 안내하고 있었다. 사거리에는 젊은 엄마들이 자식을 기다리는 모습도 보인다.

활력이 넘치는 봄날의 저녁이기도 하다.

도로를 가로질러 공원에 들어섰다. 컴컴한 길에는 간혹 산보를 마친 사람들이 지나갔다. 대부분은 개목 줄을 손에 쥐고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집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붉게 타올랐던 연산홍꽃이 시들어 나뭇잎 위에 얹혀 있었다. 모든 것이 잠시다. 그 화려했던 꽃들이 순식간에 졌다.

길 가장자리에는 꽃잎들이 떨어져 갈색으로 쌓여 있었다.

바람에 쓸리고 빗물에 밀려서 길가에 모여든 것들이다.

그냥 걸었다. 이미 녹색이 공원을 채웠다. 잔디광장에는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그 넓은 터가 펜스로 둘러쳐지고 있었다. 돈을 받으려면 막아야 하는 것이다.

실외마스크 착용이 해제된다는 예고와 함께 대규모 공연을 준비하는 것 같다.

코로나로 2년 여간 참아온 행사들이 많다. 수천 명이 하룻밤을 밟으면 잔디들은 누렇게 죽는다.

그래도 수입이 있어야 공원을 유지할 수 있을게다.

공원둘레길로 걸었다. 2킬로미터쯤 왔을까. 호숫가에 앉았다. 작은 호수에는 어둠사이로 파도가 일어나고 있었다. 최근에 내린 비로 많은 물이 저장된 것 같다.

평화의 문에는 국기들이 나부끼고 대로변에는 차들이 밀려가고 있었다. 다시 걸었다.

내 앞을 걸어가는 여자의 발길이 빠르다. 나도 느린 편은 아닌데 많이 걸어본 사람 같았다. 자전거를 탈 때도 그랬다.

나를 스쳐간 사람들은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지곤 했다.

방이동 먹자골목엔 벌써 사람들로 부산하다. 어떤 식당은 자리가 꽉 들어 찼다.

실외마스크가 사라지면 상권이 코로나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시간을 걸었다. 초저녁이 밤으로 가고 있다.    정두효 / 2022.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