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을 걷다
동구릉에 들어서자마자 빽빽한 숲이 다가왔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우거져 있다. 능과 능사이를 잇는 길도 숲길이다. 걸어도 걸어도 지루하지 않는 곳이었다.
태조 이성계의 건릉은 조성 된 지 600년도 넘었다. 동구릉이 만들어진 것과 역사를 같이한다.
그의 고향은 영흥이다. 한양 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묘는 아마도 개성쯤에 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이자춘의 묘는 함경도에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정도전. 무학대사의 공이랄까.
그도 고향을 그리워 한 모양이다. 그의 능의 억새풀은 함흥에서 가져와서 심어졌다고 하지 않는가. 후대 왕들이 보전책을 강구하여 아직도 그 억새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동구릉에는 7명의 왕 무덤이 있다. 총17기 중 나머지는 왕후와 후대가 추존한 왕들이라고 한다.
능의 형태는 거의 비슷하다. 전문가가 보면 능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정면에 홍살문이 있고 가운데 정자각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능이 자리하고 있다. 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통사람들은 볼 수가 없다. 가까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자료 시진이 있어 짐작이 간다. 다른 곳에 있는 능도 그렇지만 능이 자연적으로 생긴 언덕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능을 만들기 전 높은 언덕을 만들어 그 위에 봉분을 조성한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 크기가 엄청나고 중장비가 없던 600년 전 일이다. 사람의 인력으로 그런 능을 만들었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떻게 그 높은 흙 둔덕을 쌓아 올렸을까. 삽과 곡괭이밖에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1개 사단인력은 동원 되고 공사기간도 길었을 것 같다.
아마 당대 왕이 생존 때부터 능 자리를 미리 정하고 사전에 조성하기도 했을 것이다. 특별한 예외상황이 있기도 했겠지만,
동구릉에는 태조뿐만 아니라 문종 선조 현종 영조 헌종 등의 능이 있다. 오래된 곳이고 그 자체가 큰 규모의 공원 같아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특히 지하철8호선이 연장되어 교통이 편리하게 되어 더 그런 것 같았다.
동구릉 안에는 2.7킬로미터에 이르는 숲길도 있었다. 숲길에도 나무들이 들어차 있었고 새소리들이 그치지 않았다.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숲길뿐 아니라 능 사이를 잇는 길들이 모두 비포장 이어서 걷기에 좋은 곳이었다.
능마다 땅이 넓은데다가 잔디가 잘 조성되어 경치도 빼어났다.
동구릉을 걷는 것은 세상과 떨어져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능은 도로와 떨어져 깊숙한 곳에 있었다. 외부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철종이 그랬다고 했던가. ‘헌종의 묫 자리를 보고는 '이곳은 선대왕들의 혼들이 모여 노닐 기에 참 좋은 곳’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곳은 조용하고 밤이면 적막만 흐르는 곳임에 틀림 없다. 그도 이곳 능 자리가 천하의 명당임을 알았던 모양이다.
조선의 왕들의 능은 많은 곳에 흩어져 있다. 서울 고양 김포 파주 화성 양주 여주 영월 개성 등 좋은 묫자리를 찾아 먼 곳을 마다 않고 곳곳에 조성된 것이다.
이 모두가 역대 중국에 있었던 나라들에서 내려온 관례를 따른 것 같다.
조선 왕들의 제사가 종묘에서 행하지만 각각의 능 에서도 일정한 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능의 정자각에는 해당왕의 제례일자가 적혀 있었다. 한 해설자는 건릉(이성계)의 제사일은 양력6월27일인데 너무 덥고 사람이 많아, 오지 않는 편이 좋다고 했다.
왕조를 건국한 이성계의 능이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았다..
정두효/ 2025.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