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 가는 고향 길
고향은 먼 곳에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하루를 가야했다. 열차는 띄엄띄엄 다녔고 속도도 느렸다.
고속도로는 없었다. 오는 길, 가는 길엔 많은 시간이 소요 됐다.
그래도 고향 가는 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집을 나서면 황강물이 흐르고 강을 건너면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이룡 산이 등고선을 그리며 높게 서있는 강변 마을은 정겨웠다.
달은 언제나 그 산위로 넘어갔고 자녁별이 빛났다.
밤이면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고 푸른 바람이 불어왔다. 그곳에는 부모님이 계셨고 친구들이 있었고 추억들이 쌓여 있었다. 집을 돌아 신작로를 걸으면 초등학교 였다..
재잘대던 어린 시절이 그기에 있었다. 교정은 온전한 추억을 담고 있었고 그리움이었다.
해가 기울면 언덕 너머에서 소먹이러 갔던 아이들이 돌아 오는 행렬이 있었고,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들렸다. 해질녘 그 소리는 하루의 마감을 알리는 것이었고, 정겨운 고향의 모습이기도 했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아주 잠깐사이에, 지금은 21세기, 세상은 천지개벽을 했다.
열차로 대구에 내려 서부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갔던 고향 길은 쉽지 않았다. 이제는 단번에 자동차로 다니게 됐다.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김천에서 지방도로를 달렸던 길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생기며 단축됐다.
명절이 오면 부모님과 형제를 만나 기위해 길을 재촉하곤 했다. 힘든 길이었지만 반겨주는 가족이 있었고 그런 날은 행복했다. 도시에 고향을 둔 친구들은 부러워하기도 했다.
명절이면 고향 가는 사람들로 전국도로가 몸살을 치렀다. 방송에서도 고향길 특집을 내보내고 분위기가 고조 됐다.
지금은 국제공항으로 사람들이 몰리지만 명절의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도로가 확장된 만큼 차도 늘어났다.
부모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그래도 꾸준히 고향을 찾아갔다. 때로는 자동차로, 때로는 버스로 가기도 했다. 부모님의 명절차례. 기제사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세월이 빠르게 흘렀다. 조카들이 커가고 우리 집 아이들도 모두 결혼을 했다. 손주들도 커가고 있다. 가족이 늘어나면서 각자의 삶의 규모가 커져 갔다. 가족끼리 모이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고향 가는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은 가고 어느 듯 노년에 접어들었다. 번거로운 일을 피해가는 것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지금은 한해 한 두 번 정도 가고 있다.
지금의 고향마을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오랜 세월이 흘러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일가친척 외에는 서먹서먹할 뿐이다.
사람은 자주 만나야 정이 든다고 했다. 고향 마을도 많이 변했다. 집을 나서면 만났던 강물은 건너편으로 멀리 흐르고 있다. 끝없이 펼쳐졌던 모래밭은 오래전 없어졌다. 강바닥은 수양버드나무가 뒤덮고 있다.
집 앞 모래사장은 인조축구장이 만들어져 밤에도 불을 밝히곤 한다. 축구장 옆으론 파크골프장이 생겨 낯선 사람들이 운동을 즐긴다.
집을 나서면 불어왔던 싱그러운 바람도 반짝이던 별들도 불빛에 잠식되어 사라져 갔다.
해와 달은 그곳에서 뜨고 지지만 모든 환경이 낯설게 변했다.
9월 초에는 조상님들의 위패를 납골당에 모시는 행사를 했다. 내년부터는 벌초도 하지 않게 됐다.
벌초 날을 잡아 위패를 모신 곳에 모여 풀도 베고 제를 지내기로 했다.
앞으로 고향을 찾는 일은 더 줄어들 것 같다. 어느 시점에 머물 곳이 없어지면 찾기 힘들게 될 것이다. 가까운 곳이라면 스쳐지나 가기라도 하면 되지만 서울에서는 그것이 여의치 않다.
그때가 되면 육체적으로도 힘들 것이다.
이른 아침 물안개 속의 희미한 버들 가지처럼, 고향도 기억도 흐려져갈 것 같다. 마음속 추억으로만 떠도는 그런 곳으로...
2024. 9.17일 추석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