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바람 숲

그림자 그림

옐로우 리버 2023. 6. 5. 15:16

산에는 수많은 그림이 있다. 오솔길에서 언덕에서 바위에서도 온갖 그림을 만난다. 햇빛이 쏟아져 내리면 온 산은 그림자 그림 천지다. 그림은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만들어 진다. 바람이 멈추면 그림은 더 강렬하다. 정지된 그림이다. 바람이 불면 그림은 흑백의 동영상이 된다. 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잎이 살랑이면 그림은 온갖 형태로 눈앞에 어른 그린다.
빛이 그림을 창조하는 두되라면 나무는 붓의 손잡이이고 가지와 잎은 붓이다. 땅은 종이다. 빛과 바람과 살아 있는 나무와 풀이 만들어 내는 그림은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그냥 빛과 바람과 나무와 풀들이 그림을 만들어 낸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도 멈춤이 없는 작업이다.
자연의 그림은 흑백이다. 색깔을 칠하지 않는다. 빛에는 온갖 색깔을 갖고 있지만 나타내지 않는다. 흑백으로만 그려진 그림은 깊고 오묘하다.
옛날의 그림은 모두 흑백이었다. 사진도, 텔레비전도 그랬다. 지금도 흑백의 그림이 이용되고 있다. 흰 것과 검은 것은 모든 물체의 기본이다.
자연의 그림은 컬러가 없다. 모두가 흑백이다. 땅은 밝고 하얗고 그림자는 흑백이다. 그것이 존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에너지다. 나무와 풀이 그리는 그림을 온갖 형태로 바꾼다. 자연이 이 세상에 그리는 그림은 얼마나 많을까. 산등성이에 부는 바람이 멈췄다. 흙에 그린 그림도 멈췄다. 강력한 빛이 내린다. 바람이 분다.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하게 천천히 부드럽게 그림을 그려 나간다.
이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림은 어느 순간에도 똑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햇빛의 강약도. 바람도 똑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똑 같은 그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더 같을 수 없는 것은 모든 자연현상이 일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다는 것이다. 성장하고 쇠퇴해가며 형태가 바뀌어 간다. 사람이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장이, 죽음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이나 들판에서 그려지는 그림은 수 없이 많고 또 사라져 간다. 우주의 별보다도 세상의 모레보다 더 많은 그림들이 그려지고 사라져 간다.
이 세상의 흙 알갱이보다 더 많은 그림들이 그려지고 지워져 간다.
해가 만드는 그림은 흙의 반사로 부드럽다. 달빛이 만드는 그림은 어둠속에서 더 강하고 진하다. 밤길을 걸으며 따라오는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따라오는 때도 있다. 달빛의 그림은 으스스하다. 해가 만드는 그림은 평화롭다.
선 중턱에 자리잡은 통나무 의자에 앉았다. 발아래 그림을 본다. 순간순간 형태가 변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면 그림이 춤을 춘다. 정두효 / 2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