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의 추억
대병 쪽 작은 협곡을 빠져나온 물은 고품 마을 들녘을 휘감아 부챗살같이 퍼지며 흘렀다. 강변에는 흰모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맑은 물은 언제나 하늘을 담고 잔물결에 반짝이며 빛났다. 강물이 흐르는 왼편은 수십 미터 높이의 절벽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삐죽삐죽 솟은 버드나무들은 강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새벽이 희끗하게 밝아오면 사람들은 강물을 길어 물 독을 채우며 하루를 시작했다.
#1, 여름 날 하루해가 서산에 지고 어스름이 밀려오면 아이들은 소 등에 올랐다. 왼손엔 소꼬리, 오른손으론 고삐를 잡고 노을이 물든 강을 건너 집으로 향했다. 소등은 따뜻했고, 소는 주인을 잘 태워주는 착한 거인이었다. 소들이 버드나무 숲을 다니며 풀을 뜯는 동안 아이들은 모래밭을 뒹굴었다. 친구들과 공차기. 술래잡기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들이 산과 들로 다니며 소를 먹이는 일은 농촌 생활의 일상이었다.
더운 여름이면 아이들은 온종일 강물에서 살았다. 맑은 물, 홍수 후의 흙탕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놀면서 헤엄치는 법을 터득했다.
한두 번 위험했던 고비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좀 더 깊고 넒은 곳으로 헤엄쳐 가는 것은 아찔한 스릴이기도 했다.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아이들의 몸은 새까맣게 변했다. 햇빛에 피부가 타들어가도 물놀이는 멈출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홍수는 강변마을들을 흙탕물 로 뒤덮었다. 홍수는 종종 사람들의 생명도 앗아 갔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물놀이의 주의 같은 것은 가르치지 않았다.
스스로 적응하며 살아가게 했고 농사일로 바쁜 어른들에겐 그럴 여력도 없었다.
#2, 흐르는 강물 따라 하던 낚시는 참 즐거웠다.
고기들은 언제나 떼 지어 강을 거슬러 올랐다. 나는 오후 늦게 낚시를 하곤 했다. 물길 따라 낚싯대를 던지면 입질이 시작되었다.
어떤 때는 고기들이 둥둥 떠가는 파리 달린 낚싯바늘을 바로 채기도 했다. 낚싯대에서 타닥타닥 느껴지는 입질의 진동은 희열이었다. 낚시에 걸린 고기는 파닥 거리며 허공에서 떨어져 도망가기도 했다.
성질 급한 피라미들은 주전자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탈출구 찾았다. 잡은 고기를 넣기 위해 뚜껑을 열면 잡혀있던 놈이 튀어 올라 사라져 갔다. 형과 내가 나가면 순식간에 한 주전자를 채웠다.
주전자 속 고기가 가득 차면 작은 어부는 낚싯대를 어깨에 매고 집으로 갔다. 낚시 미끼는 파리였다. 옛날 부엌에는 파리 천지였다. 손바닥을 펴고 파리가 앉은 역방향으로 팔을 휘두르면 한두 마리는 그냥 잡혔다.
20대엔 친구들과 맨몸으로 강물 속을 뛰어다니며 고기를 잡기도 했다.
강 모래톱에 둘러앉아 초고추장에 잡은 고기를 찍어, 소주를 마시던 시간들도 즐거움으로 남았다. 하얗던 등 피부는 두어 시간이면 허물을 벗었다.
#3, 더운 날 저녁 강변 모래밭에 앉으면 붉은 노을이 서쪽하늘을 물들였다.
노을은 먼 하늘로부터 노란 복숭아 색깔로, 해가 기울면 짙은 오렌지색으로 불탔다. 마침내 붉은 해의 기둥은 산 넘고 강을 건너 아이가 앉은 물가에 닿고, 강물도 아이의 얼굴도 노을빛에 젖었다.
붉은 강물 위에는 고기들이 팔딱팔딱 뛰어오르며 반짝였고, 해가 사라진 서쪽 하늘엔 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강은 여름날 용지리 마을 사람들의 공중목욕탕이었다.
저녁이면 사람들은 홑이불 돗자리 등을 들고 모래사장에 모여들었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이곳저곳에 앉아 도란도란 여름밤을 보냈다. 어둠이 내린 강물 속은 멱 감는 사람들의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상류는 여자, 하류는 남자들 차지였다.
강은 들 일로 지친 사람들의 땀을 말끔히 씻어줬다. 강변엔 모기가 적었고 물 위를 스쳐 온 바람은 시원했다. 강물에 누워 하늘을 보면 은하수는 반짝이는 강이 되어 흘렀다.
물기를 말리고 홑이불에 누우면 지친 몸은 어느새 졸음이 쏟아지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방바닥은 모래알, 천정은 별들의 군무로 생명이 넘쳤다. 캄캄한 밤이면 별똥별들이 하늘을 가고 질러 가기도 했다. 달 밝은 밤엔 강물이 쪼르륵쪼르륵~ 소리 내며 흘렀고, 은모래는 달빛에 하얗게 빛났다.
모래밭에 잠든 새벽, 옷은 이슬에 젖고 몸은 무겁기만 했다. 아이들은 좁은 집보다 강변에서 잠자는 것을 좋아했다. 강은 한 폭의 고운 수채화였고 마음의 쉼터였다.
농촌의 강변 생활은 하늘과 강 그리고 바람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밤이 되면 밤을 맞고 아침이면 모두가 들판으로 나가 농사를 지었다.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감했다. 사람들은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 속에 그렇게 살았다. 그 하얀 모래밭, 별이 빛나던 여름밤, 고기가 떼 지어 노닐던 맑은 강은 이제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았다. 고향의 강은 삶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 함께 오늘도 마음속에 흐르고 있다. 정두효/2020.5